주지훈/궁

궁 21부- 태황태후와 채경

모놀로그 2011. 4. 20. 13:43

할마마마인 태황태후는 채경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태황태후는 채경이과인데,

다른 점이라면 황실이 답답하다고 난리를 피우거나,

적응하려는 노력을 전혀 안하면서 사고만 치고 다닌다던가,

황실의 일원이라는 자각을 가지려는 마인드 자체가 아예 없는

채경이와는 달리,

 

나름 궁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서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은 인물이다.

신군의 표현을 따르자면,

궁이 답답하다고 투덜대면서 이기적인 집단이라며 황족들을 째려보는 대신에

숨쉬는 방법을 터득하여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도 궁에서 즐겁게 지내는 아주 현명한 인물인 것이다.

 

태황태후도 다시 태어난다면 가능하면 황실에서 먼 곳이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녀도 젊은 시절엔 궁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진하며 가진 건 넘치는 사랑 뿐이니 당연히

정치적으로 늘 첨예한 황실이 적성에 맞을 리가 없다.

 

신군이 그러하듯, 선황도 그녀의 됨됨이를 잘 이해하였을 것이고,

자신의 아내를 무척 사랑했을 것 같다

 

태황태후는 필요할 땐 황족의 위엄을 보이고,

필요할 땐 서슴지 않고 자유를 누린다.

 

남몰래 티비 드라마를 보며 좋아하기도 하고,

세속적인 은어들도 배워서 써먹을 정도의

여유와 융통성을 가졌다.

 

그게 연륜일 것이다.

낙천적이고 선량하지만

연륜과 경험에서 오는 은은한 카리스마를 지녔으며,

황실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다.

 

거기까지 이르기 위해 태황태후인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연히 자기와 너무나 닮은 채경이를 잘 이해하고, 귀여워한다.

그런 태황태후이기에,

채경이의 이혼 발언에 누구보다 충격을 받는다.

 

태황태후가 받는 충격은

무턱 화를 내는 황제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황실의 체통이나 걱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단순히 황태자 부부의 불화가 원인만은 아니고, 

그보단  총체적 난관이 어느 틈엔가 황실을 좀먹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황실에 큰 폭풍이 닥칠 것 같습니다'

 

라고 태황태후는 예언한다.

 

그 총체적 난관이, 궁에서 가장 힘없고 나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채경이를 먼저 공격하고 있고,

채경이가 그것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