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21부-황태자비의 손을 잡는 황태자
그날 신군은 물론이고,
채경이도 비교적 잘해내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잠시 불꽃이 번쩍 일긴 했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분위기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래서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황실 가족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미소꽃을 피우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19세의 황태자 부부..
얼마나 이쁜 그림인가!
아니 얼마나 이쁘고 귀여운 한쌍인가~!
깐깐한 황제 부부도,
사람 좋은 태황태후도
개방적이고 초연한 혜명 공주도
흐뭇해하고 있다.
어떤 질문이던 척척 대답해내는 신군은 얼마나 듬직하고 의젓한가!
정말 일국의 황태자로서 흠잡을 곳이 없다.
게다가 황태자비는...
사람좋은 할마마마가 슬쩍 지적한대로
옷차림이 좀 거시기한 것만 빼면,
어떻게하면 화면에 영화배우처럼 나올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오죽하면 할마마마가,
어쩐지 좀 이상한 황태자바의 표정과 느낌을,
'얼짱 각도'의 각을 잡기 위해 고심하는 것으로 해석했을까??
하긴, 우리가 아는 채경이었다면
아마 정말 그런 고민을 하는 것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아..그때가 그립도다!
난 살면서 그런 장면을 참 많이 봤다.
즉 겉보기에 그럴듯한 장면 말이다.
그리고 겉보기에 그럴 듯한 그림일수록
이면엔 파괴적인 진실이 도사리고 있음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원래 내실이 있는 건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굳이 그럴싸한 그림을 그려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온갖 소문을 뿌리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홍보 때려주고,
만인의 관심이 대상이 되는 결혼일수록,
그래서 그 화려함이 극치에 이르른 결혼일수록
내막은 빈약하고 허위에 가득차 있거나
떄론 텅 비어 있기까지하며
결국은 그 화려한 껍데기 이면의 빈약하고 초라한 실체를
까발리면서 추악하게 파탄이 나는 결혼이 많다는 것도
살면서 숱하게 보았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생방의 황태자 부부가 그 전형이다.
너무나 이쁘고 귀여운 한쌍의 어린 황실의 새싹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그럴 듯하게 보인 이유가 뭘까?
내막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채경의 의상과 화장을 보고 있노라면
난 그것이 그녀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참으로 황태자비답지 않은 모습인데,
그녀는 지금 황태지답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내면의 빈약하고 초라하며 비참함을 감추기 위해,
혹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겉모습은 더더욱 화려해졌고,
채경이 답지 않은 요란한 겉치레가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혼을 말하면서
사이좋은 부부처럼,
황실의 미래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커플처럼 보이는
신군과 채경의 모습도 그러하다.
생방 내내 신군은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 그림만 잘 유지해준다면..
모델처럼 앉아 있는 것으로
만인을 만족시키고 있는
황실의 인형같은 자신들을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봐주길 바랬다.
그러나 채경이가 마지막 순간에
그 그림에 물감을 흩뿌린다.
'거시기....이혼을 하려고...'
채경이가 저 말을 힘겹게, 그러나 무엇엔가 쫓기듯 내뱉었을 때,
그녀의 표정을 보라.
마치 천길 낭떨어지로 몸을 던지는 사람 같다.
좋게 말해준다면
그녀는 그렇게 겉보기에 그럴듯한 그림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게 있다.
그녀의 혼인이다.
마지막까지 너무나 잘 해내었다.
정말 황태자 부부가 멋지게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결말은 채경의 대수머리가 총리의 대머리를 내리찍는 것이었다.
지금도 결국
그녀는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혼인 날,
신군은 본의아니게 총리와 머리를 맞대고 있어햐하는 순간에
채경이 본능적으로 내민 구원의 손길을 내친다.
오히려 창피하다는 듯,
저 여자애는 나와는 전!혀 !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애의 푼수짓을 나와 연결짓지 말아달라는 듯
가능한 멀찌기 채경에게서 멀어진다.
그러나,
생방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떄,
신군의 손은 채경의 드레스 속을 파고 들어와서
꼭 잡아준다.
총리의 머리를 찧었을 땐 모른 체 했지만,
아니 가능한 멀리 떨어지려고 했지만,
이젠 황태자비의 무게를
연약한 목이 감당하지 못하여 다시금 휘청하는 채경에게
지금은 조용히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대수머리의 어마어마한 무게를
비록, 처지가 처지이니만큼 낼름 들어내서 내던지진 못할 지언정
그녀가 내리찍은 총리를 밀어내고
자기가 그 대수머리의 공격을 대신 받으려는 것 같다.
혹은 그 짐을 나눠지려고 하는 것 같다.
그 순간에 신군의 마음 속은 온통 지옥이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신군은 채경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신군이 하는 것이 남자의 사랑이다.
그는 채경이가 지금 해선 안될 짓을 했음을 알고 있다.
여전히 채경이에겐 황족의 마인드나 매커니즘은
조금도 깃들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철없고 사태파악 못하고
푼수짓을 하고 있다.
그것을 즐거워했던 시절도 있다.
그래서 그녀가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러다보니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의 그런 분위기 파악 못하고 푼수짓을 하는 이면엔
솔직함이 있다.
신군은 누구보다 채경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다.
방금 전에 처절하게 배신 당했지만,
그에 대한 응징이야 두고두고 할 일이고,
그 순간에 그녀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가 대수머리의 무게를 나눠지는 방법은
그렇게 생방에서 감히
이혼을 입에 담는 황태자비의 손을 잡아주면서,
마치 그 말은 채경의 일방적이고 무지한 발언이 아니라,
자신과 의논한 일이었던 양 말한다.
이건,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문제였어.
그러나 이건 그냥 말하지 말자고 약속했었지.
우리 채경이는 워낙에 솔직한 성격이라
그만 말하고 말았네?
그래, 마자
이건 우리가 함께 나눈 고민이지
결코 채경이의 일방적인 실수는 아니야.
그러니까
채경이에게 돌 던지지마.
내가 가만히 안있을거야.
대신 내가 사과할께
일국의 황태자 부부가 이혼을 두고 의논했던 걸
사과할께.
잘못은 내게 있으니 채경이에게 뭐라고 하지마.
이런 의미로
신군은 손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단 대국민 정서는 안정시키려는 것이다.
황실에 대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의 경험상 먹히지 않을 건 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렇게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이혼이란 문제는
결코 채경이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며
그녀의 대수머리 무게를 함께 짊어지려는
신군의 마음이다.
난 그래서
저 장면이 가슴 아프고,
신군이 채경의 손을 잡는 것이 가슴 아프다.
채경은 그러나,
신군의 손을 뿌리친다.
그가 함께 나눠지겠다고 했음에도
그녀는 거절한다.
채경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신군의 마음이다.
그녀에겐 어쩌면 여전히 국민들을 상대로 벌이는
제스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것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짐을 국민들 앞에서만이라도
나눠지려는 마음이 통하지 않는 건
참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