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21부- 신채경 이혼 발언의 수혜자 주지훈
채경의 이혼 발언에 대해선
할 말이 허벌나게 많지만,
일단 나도 내 감정을 수습하기 위해
그 장면에서의 신군에 대해서만 말해야겠다.
우습게도 채경이는 신군이, 아니 주지훈이
얼마나 멋진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굳이 자청해서 바보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감사해야할 판이다.
궁 후반에 들어서면 신군이 주지훈이고, 주지훈이 신군이니
누가 멋진들 어떠랴!
그는 그 장면을 무마하기 위해
그야말로 황족의 자존심과, 황태자의 존엄성,
거기에 덤으로 한 남자로서의 진정성과 체면까지
대 국민 앞에서 처절하게 짓밟힌 것을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채경이 친 사고를 수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습하는 장면에서의
주지훈의 신군, 신군의 주지훈은 그야말로
감탄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사고는 채경이가 단 한 마디로 쳤는데
그걸 수습하기 위해 신군은 천 마디쯤 해야 한다.
놀랍게도 주지훈은 나긋나긋하고도 도도하며
침착하기까지한 태도로 그 장면을 이끌고, 주도권을 조용히 자기에게 끌어당긴다.
타고난 화면 장악력이 그 힘을 최대한 발휘한다.
정작 중요한 발언을 한 채경이는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바보같은 얼굴로 앉아 있다.
뭐 짙은 화장과 야시시한 옷차림만 아니라면
초딩 같아서 귀엽긴 하다.
그런데 그럴거면
대체 뭣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까?
기왕 말을 꺼냈다면 수습은 자기가 하던지,
자기 말을 막아버리는 신군은 밀어제치고
기왕 막 나가기로 한 거 끝장은 봐야할 것 아닌가!
아무리 여자라도 해도 칼을 뽑았으면 과일이라도 깎아야할 거 아니냔 말이다.
혹은 죽어도 이혼하고 싶으니
국민들이여! 도와주셈!
하고 외치기라도 하던지..
그랬다면 차라리 난 채경에게 박수를 보냈으리라.
난 그런 걸 좋아하니까.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책임지란 말이지.
아무 대안도 대책도 없이
달랑
이혼...
이라는 떡밥만 던져놓아
온 세상과 황실을
발칵 뒤집어놓고는 정작 자기는
입을 헤 벌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순간에 아마도 신군은 마음 속으론
'신채경이여~너 마저!!'
라고 외쳤을 것이고,
기어이 입밖에 낸
'이혼'이라는 칼을 자기의 가슴에 찌른 채경을
원망스럽게 돌아보았을 것이다.
또한
황궁으로 돌아가면 눈에 불을 키고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할
황제를 떠올리며
'난 이제 죽었다
피곤한 내 인생이여~'
를 외쳤을 것이지만,
그 순간엔 더없이 고요한 카리스마로 철없는 마누라가 친 대형 사고를
수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가 수습하는 방법이다.
그 순간만을 모면하기 위해
잔재주를 부리거나,
생쇼를 하는 대신에,
그는
진실을 말한다.
거기엔 자기 자신의 채경에 대한 진실 혹은 진심도 들어 있다.
왜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보다 디테일한 고백을 하고 있다.
그건,
채경에게 해주는 말일수도 있고,
국민들에게 해주는 말일수도 있으며
황족들에게 해주는 말일수도 있다.
그의 가슴에서 비록 피가 뚝뚝 흘리고 있을망정,
무엇보다 먼저 그는 채경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
끝내 그녀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게끔 했던
자신의 지난 날의 행동을 그녀에게 사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거기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헤아리고 있음을
일단 그녀에게 들려주고 있다.
또한
채경이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채경이의 명랑하고 밝아보이는 웃음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모른 체 방치함으로써
초래한 이 모든 결과가 자기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국민 앞에서 고백하고,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채경에게 미칠듯한 분노와 실망, 미움 증오
등등의 복잡한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지만,
어떻든
그 자리를 수습하기 위해서 그가 택한 방법은
채경에게 자신의 진심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의 신군이 얼마나 멋지고,
주지훈이 얼마나 차분하게 그 장면을 이끄는지
바라보며
난 그저 입을 헤벌리고 있었으며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기어이 하는 것으로
신군이 얼마나 멋지고,
주지훈이 얼마나 멋진가를 증명할 기회를 준 채경에게
감사를 해야할 판이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 또한 채경이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