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마왕

마왕 17부- 유기농형의 사진

모놀로그 2011. 4. 12. 01:12

내 일찌기 유기농형이 맡은 주요 역할은

오승하가 곧 정태성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오승하라는 애매모호한 인물,

분명히 눈 앞에 있는데도

없는 것 같이 비현실적인 인물에게 실체감을 부여하기도 하는데,

 

주요 등장 인물들,

즉, 사무장이나, 해인, 그리고 오수에게까지

그러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해서

오승하의 형이라고 스스로 칭함으로써

그에게 실체감을 주었고, 그의 신분에 대한 의구심을 없앤다.

 

해인을 그의 농장에 데려감으로써

승하라는 묘한 인물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오수에게도

소라를 형의 농장에 맡기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보다 확실하게 규정짓는다.

 

대개 인간은,

인간 관계나, 가족,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

보다 확실해지는 경향이 있다.

 

만일 유기농형이 없었다면,

오승하는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은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

 

초현실적인 느낌의 그에게

매우 조촐하고 현실적인 유기농형이 있음으로써

그의 존재는 일단은 실체감을 부여받는 것이다.

 

일종의 신분증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오승하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하다.

 

오리지날 오승하가 떠난 후에,

정태성에서 오승하로 옷을 갈아입은 그가

같이 지낸 인물이고,

따라서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는 살아있는 증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기농형은 정태성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

오승하가 실은 정태성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몰라서 더 위험한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이다.

안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텐데 모르기에

서슴 없이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사진이라는 위험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 사진 속엔

오승하라는 이름의, 그러나 오승하 아닌 정태성의 얼굴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태성을 본 유일한 인물이 있다면

그건 해인이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엔 그 사진이 있다.

 

승하는 유일한 사진이라고 믿고

정태성을 말살하지만.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한 장의 사진이 더 남아 있었던 것이다.

 

유기농형은 자랑스레, 해인에게 사진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승하의 정체를 싸이코메트리를 통해서 알게 된 해인에게

확인 사살을 해준다.

 

일찌기 어떤 분이 마왕 리뷰에서,

마왕의 러브라인은 정말 매력적이어서

따로 편집해도 하나의 훌륭한 멜로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정말 그러하다.

 

자신의 능력을 쏟아부어 사건을 해결하려고 기를 쓰는 해인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태성에게

그녀는 또한 가장 고맙고, 잊을 수 없는 아이이다.

 

고마운 건 고마운거고, 이용하는 건 또 이용하는 것이다.

 

그토록 감정과 이성을 명확하게 선을 그으면서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에 대한 사랑이 그의 계획을 멈추게 할 힘이 부족한 것도

비극적이면서 매력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차츰 되살아나는 정태성이라는 소년의 정서를

해인이라는 여인을 통해 성장시키면서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갈 길을 꿋꿋하게 갈 수밖에 없고,

또한 가고 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이면서 가슴 아프고

드라마 사상 유례없는 비극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런 묘한 관계를

마왕에선 얼마나 미묘하고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려냈는지 모른다.

 

과연 명품 드라마답게, 고품격의 멜로가 아닌가!

 

미스테리와 멜로의 접목이 참으로 매혹적이다.

 

해인은 정태성을 본 유일한 인물로써,

마침내 그 사진을 통해서

자신의 의혹을 확인하게 되니

그때까지 해결사임에도 불구하고 외곽지역을 떠돌던 해인은

갑자기 모든 상황의 중심으로 단번에 뛰어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