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마왕

마왕 17부- 승하의 오수를 위한 변론??

모놀로그 2011. 4. 1. 16:40

마왕 피디는 부활의 피디와 같은 분이다.

그래서인지 두 작품의 연출 기법은 참 비슷하다.

 

우선,

주먹을 꽉 쥐는 장면인데,

 

이건 박감독의 특허이다.

 

복수자 내지 등장인물들이 옥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도

그러하다.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는 등장인물들을

주로 차양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오승하에게만 주어진 특별 기법이 있으니,

 

그가 경찰서나, 법정, 혹은 병원 같은 곳을 걸을 땐

반드시라고해도 좋을만큼

 

카메라가 발치에서 그를 훑어 올라간다는 것이다.

 

아마도 촬영감독은 주배우의 기럭지가 무지하게 좋았나보다

ㅋㅋ

 

그렇게 맨 아래부터 저 꼭대기까지 샅샅이 흝어올라가면서

멋들어진 그의 슈트 간지를 카메라가 흠뻑 즐기게 해주고 싶었나보다.

 

소라엄마의 변론을 위해 법정을 향하는 오승하를

여지없이 카메라는,

발끝부터 차츰 차츰 훑으며 올라간다.

 

 

 

 

 

 

 

 

그곳엔 무표정한 오승하의 얼굴,

너무나 아름답지만, 살아 있는 사람 같지 않은

차갑고 담담한 얼굴이 있다.

 

 

 

 

 

 

 

그는 변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엊그제 오수에게 들었던 말을 마치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실은 권변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조동섭을 변호할 때도 그는 같은 말을 했던 것이다.

 

'피고에겐 살인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건 고의가 아니었다'

'몸싸움 끝에 실수로 찔린 것이다'

 

첫 승부에서 이미 승하는 정태훈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변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공판에서

비로소 그것을 깨닫는다.

 

물론,

그런 자각은 오수와의 정면 대결의 결과이다.

이래서 정면 대결이란 좋은 것이다.

 

서로 치고받고 피를 흘리고 상처가 날 지언정

하여튼 뭔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승하에게 바로 그것이 생겼다.

 

그는 문득,

오수가 외쳤던 말을 되살리는 것이다.

 

물론

 

승하는

'고의던 실수던, 당신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라고 못박았다.

 

이 말은 참 멋진 말이다.

 

오수가 고의가 아니었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왔다면,

 

그 한가닥 위안에 찬물을 끼얹는 일격이다.

 

사실,

정태훈 사건은

사건 자체보단 그 이후의 거짓에 모든 비극의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

그것은 승하에겐 거의 강박관념같은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그에겐 트라우마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문득

자기가 오수가 한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그로 하여금 주춤하게 한다.

 

그때 영철이 한 말을 떠올린다.

 

그는 자기 눈으로 봤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라고 이미 오수는 말했다.

그건 오수가 절절하게 경험한 말이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조차,

자기가 고의로 찔렀다고 믿고 있음을 오수는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오수와 태훈 외엔 아무도 그 순간에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지

알 길이 없으니..

 

하지만,

미치지 않은 담에야 고의로 벌건 대낮에 사람들 앞에서

친구를 칼로 찌를 리가 있는가??

 

그런 의심을 사도 할 말이 없을만큼

폭력 청소년이었으니

것도 오수의 책임이다.

 

오해를 했다면

역시 오해를 하게 만든 오수에게 책임이 있다.

 

그가 찌르는 시늉을 하지 않았다면

태훈도 놀라서 제풀에 칼 위로 쓰러지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말로는 고의던, 실수던!

이라고 했을망정

 

오수가 간절하게 외쳤던 말이 사실이라면..

 

하는 의심이 처음으로 승하에게 든 것도 사실이다.

 

그게 사실이라한들,

달라질 건 없지만

어떻든 오수와의 대결에서 크게 휘청한 만큼

조금 더 기둥이 옆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그는 마지못해서 그 변론을 마친다.

 

스스로에게도 공허하게 들리는,

 

그 변론이 하기 싫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