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20부- 채경&그녀의 부모의 공공의 적'신군'

모놀로그 2011. 3. 14. 22:39

궁팬들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듯한

20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한계를 넘어서서 신음소리가 나오게 한다.

 

나야 그때 그 자리에 함꼐 하지 않았으니

잘은 모르겠으나,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괴물이라면 모를까.

나도 평범한 시청자일뿐이니

내가 견디기 힘들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궁팬이라고 모두 신군만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법도 없고,

그 중엔 채경이를 편애하는 사람이나,

율군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율군을 좋아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20부를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채경이를 편애하는 사람이라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애정이 쏠려서 보지 않는다쳐도

20부에서의 채경의 행동들은

앞뒤가 맞지 않기로는

아직 절정에 이르진 않았지만

어떻든 그 징조를 보이면서 억지를 부려대고 있으므로,

 

분명 궁팬들 사이에선 볼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을 것이고,

궁을 망치고 있는 캐릭터가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채경이라는 점에서

난감하기 짝이 없었을 것인데,

 

게다가 그래도 더러운 게 정이라고

사랑하는 캐릭터가 욕을 먹으면

맘이 편치 않으면서도 일단 감싸고 봐야하니

말도 안되는 이유로

채경을 두둔해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입으론 감쌀지언정

채경이가 지금 대체 어쩌려고 저러는지

난감할 것이 분명하다.

 

 

난 작가가

상상력과 필력의 부족으로

채경이라는 캐릭터를 망쳐가면서 갈등을 어거지로

만들고,

그렇게 하여 극을 힘겹게 이끌고 있다고 보지만,

 

그냥 극 안에서 그나마 이해해준다고 본다면

어떻든 채경이는 아마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온 모양이다.

말하자면 성장통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밖엔 생각할 수가 없다.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소녀였던 채경이가

갑자기 어찌나 화장이 짙어졌는지,

이건 갑자기 십년 세월을 뛰어넘은 듯이 낯설게 보인다.

화장만 짙어진 게 아니라,

표정이나 거동이 당췌 신채경맞나 싶을 정도로

눈물과 한숨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다가

미안한 말이지만,

그 화장이나 옷차림이 민망스러울 정도이다.

고딩으로도, 황태자비로도 보이지 않는다.

 

왜 갑자기 그렇게 분장을 독하게 한걸까?

 

그때까지 소녀같이 상큼했던 채경이를

굳이 성숙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엔

그 분장이 영 거슬린다.

 

 

갑자기 화장이 짙어지고,

옷차림이 바뀐다고해서

 

그렇게 여성스럽게 보이지도 않거니와,

성숙해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선머슴같이 하고 돌아다닐 때가

훨씬 사려깊고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웠으니 말이다.

그때가 더 어른스러웠단 말이다.

 

화장을 고치고(라는 노래도 있지만)

의상을 바꾸고 나선

오히려 정신 연령은 더욱 더 낮아져서

유딩으로 돌아가서

마구 뗴를 쓰고 있는 걸로 보이니

발란스가 맞질 않는다.

 

한 마디로

짙은 화장과, 거슬리는 옷차림과

그 표정이며 말투는

어른스럽고, 여성적이며 성숙해보이지 않고

그 반대이다.

 

더 나아가 천박해보이기까지 한다.

이쯤 되니

 

대체 왜 신군이 그녀를 찾아다니는지 이해불가가 된다.

이제 공감을 못하는 것이다.

 

신군이 채경이를 찾는 동안

채경은 자신의 부모와 함께 있었다.

 

 

산전수전겪은 여자처럼

상처받은 얼굴에 심란한 표정이 그득하다.

 

짙은 화장을 한 채경이가

부모와 마주 앉아서

혀짧은 소리로

 

'나 궁에서 나가면 안되?

나 집에 가면 안되?'

 

이딴 소리를 하고 있으니

헷갈린다.

 

선머슴애처럼 하고 다닐 떄도

부모가 걱정할까봐 명랑한 척하던

사려깊은 채경이가,

 

이제 어른같은 행색을 하고는

입으론 저렇듯 무책임한 소릴 하고 있다.

 

그러니

성장통이라고 봐주려고 해도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더 가관은 그녀의 부모이다.

 

채경과 그녀의 부모가 이루는 앙상블은 가히 희극적이라

그들의 비장한 표정이 무색하다.

 

그녀의 부모는 상식적으로,

딸이 정체모를 남자와 함께 있다가

들통나서,

 

신문에 이름이 몹시도 불명예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는데,

그 원인이

그녀가 황태자비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나보다.

 

황태자비가 아니라면

그냥 평범한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면

용서가 되었을까?

 

결국 그녀가 어린 나이에 혼인을 한 게 문제라면

궁이나 황실을 탓할게 아니라

그녀에게 황실로 시집가주길 바랬던

자기 자신들을 탓해야하지 않을까?

딸을 아무 대책도 준비도 없이

궁 안으로 밀어넣어놓고는,

보험의 여왕이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돌아다녔던 자신들에 대한

통찰은 어찌도 그리 없을까..

 

그러니

자신의 딸을 아픈 마음을 감추고라도 나무라거나

가르치려들기보다

그저 안쓰럽고 딱할 뿐이라

이젠 데리고 나가고 싶어진 모양이다.

 

채경이야 어리니까 이해를 한다.

 

아무리 짙은 화장을 했어도

고딩일 뿐이니

 

사고를 쳐놓고 무서운 궁안에서

시달리는 게 싫어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무작정 피하고 싶어한다고 쳐도

그 부모들까지 그 어린 아이의 장단에 놀아나니

딱하다.

 

이때 신군이 나타나서 제동을 건다.


채경이는 신군을 보자 얼굴이 굳어버린다.

그녀는 무척 불행해보이는데

그 불행의 원인은 궁이다.

 

그리고 그 궁을 상징하는 게 신군이다.

따라서 모든 불행의 근원인 신군이

철천지 웬수이다.

 

하지만 난 왜 채경과 그녀의 부모가 그렇게

비통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 채경이는 무턱 서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궁안에서 괄시를 받는 것도 아니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찬밥 신세인 것도 아니다.

 

그녀가 사건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일국의 황실의 체통이 말이 아니며,

황태자도 황태자비인 자신도

개망신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뭘까?

 

일찌기 신군은 채경에게

율군을 멀리하라고 부탁했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단칼에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시동생이 자길 사랑해서

쫓아다니는 건

시댁에 숨겨주어야한다는 건 알았는지

그 덕분에 남편이 여기저기서 대신 꺠지는 동안에

그 남자을 위해서 입은 다물고 있다.

 

그럼 뭐 그렇게 비통한 얼굴을 할 이유도 없다.

자기가 좋아서 율군과 함께 있었고,

자기가 스스로 판단해서 율군을 지켜주고 있는데

왜 그렇게 침통하고 세상이 끝난 얼굴을 하며

도망치고 싶어하는걸까?

 

콩쥐처럼 이유없이 구박당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시동생에겐

 

넌 나의 좋은 친구니까

니가 날 사랑하는 거

숨겨줄께

라고 말한다.

 

그 시동생이 이혼하라고 꼬시면 솔깃해진다.

 

도무지가 앞두가 맞지 않아 나까지 뒤숭숭한데,

그 부모까지 가세하니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때 나타난 신군은

채경의 부모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하는데,

 

얼핏 보면 매몰찬 소리로 들리겠지만,

 

신군이 보기에

이 철없는 마누라의 부모는

마누라 못지 않게 철이 없어서

도무지가 자기 딸이 황태자비라는 자각이 없다.

 

딸이 그런 자각을 하지 못해

사고를 치고 다니면

부모라도 타일러야 하는데

부모까지 손을 맞잡고 철이 없으니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왜냐면 부모가 그렇게 장단을 쳐주면

그 피해는 역시 딸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딱해서이다.

 

그런데,

난 이 대목에서 다시금 놀란다.

결국

작가는 다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난 작가가 뭘 몰라서

채경이나 그녀의 부모를 그렇게 바보처럼 만들어놓은 줄 알았는데

신군을 통해서

뭐가 문제인지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주요 인물인 채경이를 그렇게

사리판단을 못하는 바보로,

그녀의 부모들까지 덤으로 만들어버리는걸까?

 

상식적으로도

그녀의 부모들이 하는 행태는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황실의 사돈으로서의 자각도 물론 부족할 뿐 아니라

일국의 황실에 예의를 지킬 줄도 모른다.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자신의 딸에게 이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딸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근본 이유는

자신의 딸이 한 행동에 있음을 알텐데

나무라지도 않는다.

 

이건 뭐..

 

한 말이 없다.

 

입바른 소릴 한 덕분에 신군은

그 자리에서

 

채경과, 그녀의 부모의

 

'공공의 적'이 된다.

 

 

신군의 손을 뿌리치며

채경이가 외치는 말에 난 하마터면 웃다 뒤질뻔 했다.

 

'난 숨쉴 곳이 필요해!

너같이 이기적이고 답답한 인간들을 피해서 숨을 쉴 곳이 필요하다규!!!!'

 

뭐 이런 뜻의 말을 외치는데,

 

아..

채경아.

그런 말은 거울을 보고 해야지

왜 신군에게 하는거지?

 

지금 이기적이고 답답하게 구는 건

신군이 아니라 바로 채경이 니가 아니냔 말이다.

 

신중치 못한 행동을 해서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면

그건 참으로

시집과 남편에게 미안한 일인데,

 

오히려

니들이 이기적이고 답답해서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리고 눈물겹게 율군을 위해

자신과 신군이 깨지고 있다.

 

신군과 황실이 공공의 적이 되려면

한 가지 경우 뿐이다.

 

율군이 진심 사심없이 결백한데

그만 자칫

오해를 받을까봐 그럴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율군은 정말 순백의 마음으로

친구로서 채경이를 걱정하고 배려하고 있으며,

신군은 그런 율군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의처증 환자이고,

신군과 황실은 채경과 율군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공공의 적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채경은 율군에게

 

'너에게 내 마음을 줄순 없지만...'

 

이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한다.

마음을 줄 순 없다는 건,

율군이 원하는 게 자신의 마음이라는 걸

안다는 소리 아니가!

그렇다면

 

애초에 신군이 율군을 멀리하라고 한 말이 옳은 것 아닌가!

그리고 가족이라며 감쌌던 자신이 어리석은게

맞지 않은가!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되고

감정적으로 말이 안되니

 

그냥 정말 내가 이기적이고 답답한 인간같다.

 

그래서 다시금 궁에서 가장 열받는 장면이

바로 그 휴게실 장면과,

이어지는 동궁전 발코니에서의 대화 장면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신군마저도 나를 화나게 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