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16부- 마왕의 탄식
난 가끔 오승하가 매우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의 정신 상태가 좀 의심스럽다고나 할까?
물론, 그는 정상이 아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어차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멀쩡하게, 해낼 수도 없을 것이지만,
해인과 함께 소라에 대해서 걱정하는 장면도 그렇다.
자기로 인해 엄마를 잃은 어린 소라에 대해서
걱정하는 해인에게
동조하는 말을 그것도 진심으로 하는 승하가
내겐 너무나 신기하게 보이는 것이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소라에 대해서 상의하는 건
거의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오수의 형인, 희수 앞에서
바로 자기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는 그를 바라보는 심리도 그렇다.
비록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너무나 뚜렷하게 조롱하는 표정으로 그를 말끄러미 바라보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기분이 드러울 것 같다.
오승하가 처놓은 덫은,
인간들이 가진 본성 중에서도 가장 나약하고, 가장 비열하고, 가장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사악함이 발동하지 않고는
걸릴 수가 없다.
아니, 그가 예상한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행동들을 각각 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순기는 마지막 발악으로 희수에게 전화를 해서
모든 걸 폭로하려는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희수는 제2의 마왕이 되버린다.
그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모든 인간들의 행동을 짐작하고
그 틈새를 파고들어 심판하고자 한다.
승하가 쥐어준 일타삼피의 패를,
마치 자기 스스로 얻어낸 양 착각을 하고 있다.
그중 한 패는 자신의 목을 들이미는 행위라는 걸
잊고 있는 것이다.
그렇듯, 주변에서 활발하게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남을 공격하기에 급급한 인간들을 보면서
대체 어떤 기분이 들 것인가?
확실한 건
그가 짓는 미소와는 달리
결코 유쾌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정말 쾌감만을 느낀다면
그는 이미 마왕이 아니라
단순한 싸이코패쓰로 떨어진다.
하지만,
순기의 처절한 주검을 내려다보는 승하의 표정은,
'역시 친구들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이라는 말과는 달리,
순기 못지않게 처연해진다.
그는 16세 소년이, 세상이 정의롭다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착실하게 단계를 밟아 성장했어야 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해버렸다.
그에겐 세상도, 인간도 악 그 자체이다.
하지만,
16세 소년이 범죄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않다면,
그런 아비규환의 지옥문 조각상들처럼
서로 물고 물리는 괴물들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과연,
순기를 내려다보는 승하의 표정은
탄식하는 마왕의 그것이 된다.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주는 그들에게
연민과 경멸과 고통, 그리고
덧붙여 자기 혐오까지 이제 엄습해오는 것 같다.
그 모든 것들을 등에 지고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그의 모습은
순기의 처절한 주검에 못지 않게
유령같고,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 같지 않다.
그는 지옥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그가 오수에게 보내는 순기의 모습이 담긴 메시지는,
단지 통쾌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이란 이런 것이라고,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너희들이 선택하는 건 결국 파멸이라고 탄식하는 것 같다.
그 순간에
그가 느끼는 고독을,
오수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간의 생명을 게임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던 오수는,
현재 승하로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일 수 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요, 키를 쥐고 있다고 믿는 승하로선,
오수의 그 터무니없어 보이는 신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는 16세의 불안한 정서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지적 마왕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지만,
실은 승하도 지극히 불완전한 인간일뿐이며,
게다가 16세의 소년일 뿐이다.
그런 그가,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의 현장을
오수에게 보여주는 것이,
내겐 꼭 구원을 요청하는 것만 같이 보인다.
이 무서운 지옥 속에 나 혼자 있기 싫으니
같이 있어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승하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웬지 내겐 그의 마음 속 깊숙히에선
너무나 무섭고, 외롭다고 울부짖는 소년이
웅크리고 앉아,
그가 증오하지만,
그러나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밧줄인
오수에게 SOS를 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러한 승하의 처절한 고독 속에
나 또한 동참하게 된다.
나도 같이 슬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