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햇빛 속으로'
며칠 전부터
옛날 드라마 '햇빛 속으로'가 갑자기 몹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겐 의미깊은 드라마이다.
내가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한 첫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초고속망이 막 깔렸을 때,
난 제일 먼저 '햇빛 속으로' 다시보기를 하려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그땐...
원시시대구나 싶다.
다시보기는 모두 리얼 플레이어로만 볼 수가 있었다.
화질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그거라도 보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ㅋ
햇빛 속으로라는 드라마를 왜 그렇게 보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당시만해도 나도 어렸고, 여기저기서 입소문을 듣고 나선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 중에서 가장 보고 싶어했었다.
그리고 벌써 10년이 넘도록 그 드라마에 대해선 잊고 있었다.
한땐 참 좋아했는데 말이다.
특히, 그 드라마의 삽입곡이었던
조규만의 '다 줄거야'
를 주구장창 틀어놓고 있었다.
그땐 소리바다가 무료라서 얼마든지 듣고 싶은 음악을 구할 수가 있었다.
굳이 씨디로 살 것까진 없으면서 잠깐 심취한 노래들을
소리바다로 쉽게 구했다.
인터넷의 모든 것은 공짜였고,
원하는 건 뭐든지 쉽게 구하고 볼 수 있었다.
대신에 그 질은 매우 낮았고, 실제로 구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이후로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의 십 여년만에 다시 본 햇빛 속으로는...
나에게 새로운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지금은 아저씨들이 되버린, 당대의 젊은 스타들의
파릇파릇한 모습들이 먼저 새롭다.
난 그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진 못하고 그저 이름만 들었던
'장혁'이라는 배우를 그때 처음 보았다.
사실, 그 사람이 장혁인줄도 몰랐다.
단지 어떤 남자가 몹시도 눈에 띄었다.
그는 당시에 참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분위기가 특이했다.
수줍은 남성미와, 도발적인 소년성과
청순함과 험악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눈에 힘을 줘서 그게 좀 거북했지만,
그러나
마스크도 눈에 들어왔다.
잘생겼다기보단, 슬퍼보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수줍은 듯, 쓸쓸한 듯
반항적인 듯 허탈한 듯
그렇게 많은 것을 담은 얼굴은
그러나 긍극적으론 순수하게 보인다.
햇빛 속으로는,
대체적으로 어둡다.
화면도 어둡고, 등장인물들의 삶도 암울하다.
아직 인생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암울하다.
그들이 암울한 것은 절반은 그들이 탓이고,
절반은 기성 세대의 횡포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에 깔리는 음악도
대체로 억눌린 듯한 정열이
막 폭발하기 직전의 위태로움과 신음소리같다.
실제로 드라마 자체가 그러했다.
젊은이들의 신음같은 고통이 가득하다.
달동네에 사는 젊은이나
대저택에 사는 젊은이나
그저 처해 있는 환경만 다를 뿐
기성 세대들에게 치여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그러나 그것을 포기하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다.
그러나, 젊기에 그들은 그 안에서 비틀거리면서도
끝없이 빛을 찾아 몸부림친다.
그들이 빛을 찾기까지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청춘이라는 이름의 고통스러운 시간들 때문에
그토록 화면이 어두운가보다.
질척대는 듯하면서도 건조하다.
뜨거운 것 같으면서도 삭막하다.
낯선 어둠 속을
질주하는 오토바이,
그 바퀴 속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고통스러운 노랫소리..
햇빛 속으로는,
청춘 드라마치곤 굉장히 어둡고 힘들다.
그들은 젊기에 사랑이라는 특권이 주어진다.
청춘 시절에만 주어지는 순수한 사랑이다.
그들에겐 전부이지만, 세상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도 차츰 그것을 깨닫는다.
세상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사랑이 전부일수도 없고,
그것에 자기 자신을 내던져버릴수도 없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사랑은
아직은 미지수라는 이유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당시 그토록 젊고, 그래서 순수해보이고
나약해보이는 배우들도
그런 시절을 거쳐서
지금은 성인이 되었고,
차츰 기성 세대가 되어간다.
햇빛 속으로는,
바로 그렇게 일상인이 되기 전까지
아니
일상인이 되기 위해 치뤄야할 통과의례를 보여주는 듯 하여
난 슬프다.
그들은 고통스럽겠지만,
내겐 그 고통이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 고통은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름답고 젊은 시절이 짧듯이....
그 배우들은 어느덧
모두 나이가 들어서
당시의 위태로운 청춘의 향기를 잃었다.
세상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그 바닥에서 성공했다.
그래서
내가 그 드라마를 좋아하나보다.
하지만,
일상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신음하는 듯한 어둠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단지
더이상 햇빛을 추구하지 않기에
어둠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난
그 어둠에 향수를 느낀다.
그 배우들의 그 시절 모습에
향수를 느끼듯,
그것은 또한 그 시절의 나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