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11부- 채경의 잠
여기서 잠깐, 채경의 잠에 대해 살펴보자.
채경은 잠이 많은 아이일까?
무신경하고 좋은 말로 천진하고 맑으면
언제 어디서나 잠을 잘 자는걸까?
황태자비 교육을 받을 때도 그렇고,
혼례가 끝난 후에도 그렇고,
마치 어린 아이처럼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면
잠이 쉽게 들곤 한다.
글쎄..
황태자비로서 첫날 밤을 상궁 나인들이 즐비한 가운데
맞게 되었다면,
그것도 곁에 명색이 신랑인 황태자가 있는데
깊이 잠드는 것도 난 신기하다.
신군도 물론 잠들었다지만,
어린애들에겐 혼례식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테니..
대개 남자들이 피곤해서 잠드는 거야 그렇다치고
채경의 잠은 무지하게 씩씩하게,
나쁘게 말하면 무신경해보인다.
이후,
친정에서 처음으로 신군과 같은 침대를 쓰게 되었을 때도
채경은 신군의 등에 착 달라붙어서 침까지 흘리며
잘도 잔다.
신군이 어처구니 없어 할 정도이다.
지도 잤으면서,
혹은 자는 척 했는지도 모르지만,
어떻든 신군 등에 달라붙어 자는 그 무신경함에
나도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남자와 여자는 좀 다르니 말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신군이 초대한 신군의 침대에서도
채경은 잠이 들어버린다.
신군의 품을 파고들기까지 한다.
이후로도,
정치적 합방이 이뤄졌을 때도
결국은 채경은 잠이 들어버리는데,
그때도 신군의 품에 깊이 파묻혀서 아주 달게 자고 있다.
강릉으로 밀월 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역시 신군보다 먼저 잠든다.
그때도 신군의 가슴에 안겨 있다.
그러고보면,
번번히 채경은 신군 옆에서 달게 잘 잔다.
잠이란,
조금만 불편해도 쉽게 들기 힘든 것이다.
웬만큼 둔한 인간이 아니면
잠자리만 조금 바뀌어도 불면증에 걸린다.
하물며,
남자애와 같이 있는데
그렇게 쉽게 잠들어버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그걸 채경의 무신경함이라고 보지 않는다.
채경이 늘 신군 옆에서 쉽게 잠드는 것은
결국 채경에게 신군 옆은 굉장히 편안한 것이다.
두사람 사이가 겉보기에 늘 거리감이 있고
그다지 공감대도 없고
부부로서의 유대감도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인간 관계란 말이나 행동보다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고받는 교감이 중요하다.
무의식적인 교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같이 있으면
거의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굉장히 편하고,
어떤 사람은 겉으론 유쾌하게 보여도
실은 불편하다.
아니 불편할수록 그걸 감추기 위해
과장되게 떠들고, 웃고, 뭔가 꾸미려든다.
마음 속으론 그 사람에게서 달아나고 싶으면서도
같이 있는 게 즐거운 척 한다.
신군과 채경은,
겉보기와 다르게
늘 본능적인 교감을 주고받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채경으로 하여금 깊고 달콤하고 편안한 잠을
그것도 신군의 품안에서 잘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아니,
결국엔 신군은 잠든 채경을 당겨서 자기 품안에 안아준다.
그러면 채경은 무심결에 그의 품 안을 파고들며
더욱 깊게 잠든다.
미처 인식하진 못하지만,
결국은 본능적으로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신군의 옆이 채경에겐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기가 잠든 후에
그가 늘 다정하게 안아준다는 걸
그녀가 미처 모르는 곳에서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로서의 신군 이전에
그냥 신군이라는 사람 옆에서
늘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채경의 잠은
그녀의 무신경함이 아니라,
신군 옆이 그녀가 있어야할 곳임을 느끼게 해준다.
신군은 그녀의 깊은 잠의 파수꾼이다.
그래서 그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녀의 잠을 지켜줘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군이 그렇게 지켜주고, 안아주기에
그녀는 어린애처럼 그의 곁에서 깊고 달콤한 잠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