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낙서

봄과 겨울의 기싸움

모놀로그 2011. 2. 7. 03:10

해마다  1월 중반을 넘어설 때면

겨울에 지친다.

 

12월에 시작된 겨울이 고작 길어야 두 달인데,

이상하게 지친다.

 

그건 시각적인 이유 탓이다.

 

겨울엔 앞서도 말했지만, 빛이 부족하다.

하늘은 아무리 맑아도 우중충한 빛을 띠고 있다.

 

사람들 옷 색상은 거의 검은색 계통이다.

 

하나같이 웅크리고 목엔 머플러를 칭칭 감고,

머리엔 모자를 쓰고 걸어다닌다.

 

거리엔 미처 녹지 않은 눈더미가 흙과 범벅이 되어

지저분한 쓰레기처럼 여기저기 쌓여 있다.

 

이런 광경을 한 달 가까이 보게 되면

이제 시각적으로 지치게 되는 것이다.

 

춥다는 것 자체는,

난 싫지 않다.

 

더운 것보단 나으니까.

 

더우면, 대책이 없다.

벌거벗어도 덥고, 찬물을 끼얹어도 덥다.

그렇다고 주구장창 에어콘을 켜놓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추우면

옷을 잔뜩 껴입으면 방어가 된다.

 

공기는 차디차서 맑다는 느낌을 준다.

적어도 에어콘과 차량이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더욱 탁하게 느껴지는 여름 공기완 좀 다르다.

 

그래서 난 겨울을 좋아한다.

여름보단,

 

하지만 이상하게

1월 말 경이면 겨울에 지친다.

 

시각적인 피로함과, 우울함이 극치에 이른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럴 즈음이면 결국 겨울신의 망토는

조금 물러선다.

 

봄의 여신이 멀리서 오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신과 봄의 여신이 힘겨루기를 시작하기 직전엔,

 

날씨가 갑자기 축축해진다.

 

겨울 특유의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움이 둔해지면서

오히려 음산함이 더해진다.

 

뭔가 해동되는 느낌을 주긴 하는데

그게 어쩐지 기분 나쁘다.

 

그래서 2월과 3월은 최악의 달이 된다.

 

이도 아니요, 저도 아닌,

정말 애매한 시기인 것이다.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의 가을엔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겨울과 봄 사이엔

그런 게 없다.

 

자기의 힘을 여전히 떨치고 싶어하는 겨울신의 망토를

봄의 여신이 입은 살랑대는 옷이 당해내질 못한다.

 

요즘 거리를 걸으면,

난 기분이 몹시 언짢다.

 

겨울에 지쳤고,

이젠 뭔지 살아 있는 느낌의,

초록색과 총천연색의 꽃이나 뭐 그런 것들이

보고 싶어질 무렵이다.

 

하지만 그리 쉽사리 물러나지 않으려는

겨울신의 망토의 위세와,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 뭔가를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올 겨울은 강추위의 연속이었는지라,

온 건물이 꽁꽁 얼어붙었었나보다.

 

거리를 걷노라면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면,

여기저기 건물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겨울은 추워야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렇게 전국이 꽁꽁 얼어붙으면

뭔지 소독이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이제, 겨울신이 아무리 자기 망토에 아쉬움을 품고

질척거려도

봄의 여신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내 눈이 초록색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까...

 

사람들은, 봄을 기다릴까..

 

왜 사람들은 생명의 씨앗을 보고 싶어할까..

 

생명을 살고자 하는 의지에 넘쳐 있고,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면,

이제 그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켤 것이고,

 

그것을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마음이 드는 게

바로 2월이다.

 

문득, 라일락이 말라죽었던 작년의 지독한 봄이 생각난다.

 

제발,

올해는 그런 불상사는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