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9부- 채경과 율군과 신군

모놀로그 2011. 2. 6. 13:03

채경에 대한 율군의 심리사를 잘 연구해보면,

 

채경이 신군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이고,

그저 황태자비 노릇하기에 바빠서

이 눈치 저 눈치보며,

골드들과 효린에게 왕따나 당하고,

황후에게 혼나고,

신군에겐 무시당하는 동안엔

그저 그녀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그건 율군도 비슷한 시간들을 경험했기에

저절로 우러나는 겸허한 마음탓일 것이다.

기왕의 율군이었다면 어림도 없다.

신군 저리가라할 정도로 싸가지 없는 왕자였을 것이 확실하다.

 

게다가 효린이 자기의 기득권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걸

신군의 생파에서 과시하는동안,

그 앞에서 자신의 처지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절절매는 불쌍한 모습까지 보여줌으로써

연민을 느끼고 그녀에게 잘 대해주려고 하였다.

 

그리고, 궁에서나 학교에서 가끔 만날 때마다

늘 자유로와보이고, 힘든 상황에서도 씩씩함과 명랑함을 잃지 않는

채경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애초에 율군에겐

채경에 대한 기득권을 상실한 것에 대한 원망이 잠재되어 있다.

황태자 자리에 대해서 무심한 듯 하지만

실은 그것이 자기 것이었다는 것과,

카메라 초점 안에 대한 열망이 활활 타오르는 걸 억누르는 율군이니만큼

자기가 상실한 것들에 대한 열망은

채경을 차츰 마음에 품으면서 더욱 그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래서, 신군의 그녀에 대한 방치와 무관심을 지켜보며

나라면 저렇게 안했을텐데..라고 생각했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군을 위해 아파하는 채경을 보자 갑자기 한꺼번에 폭발한다.

 

채경과 신군이 그저 형식적인 부부일뿐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는데,

채경이 신군을 위해 아파한다.

그넘은 그런 마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

 

뿐이랴,

은근히 엄마인 혜정궁의 위세를 등에 지고

그 파티의 실세였던 신군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것에

일말의 통쾌감을 느꼈을 율군은,

 

그러나

채경을 이용하여 다시금 자신의 열세를 만회하는 신군에게

불타는 질투와 분노를 느낀다.

 

그제서야 그는 그들은 누가 뭐래도 한쌍의 부부라는 것,

공식적으론 누가 뭐래도 황태자부부라는 것,

그리고 그 확고한 사실엔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자신이 망치려던 파티에서 오히려 절감하고

패배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신군은 보란듯이 채경과 로얄댄스를 하는 것으로

주도권을 찾아온다.

 

그렇다. 아무리 혜정궁과 자신이 오랜만에 파티에 나타나는 것으로

잠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순 있어도

황태자부부의 댄스라는 강력한 무기앞에선

언론은 당장 그쪽으로 몰려들기 마련이다.

 

물론 그걸 너무나 잘 아는 신군도 만인 앞에서 누가 뭐래도 그 파티는

자신들의 것이라는 걸 과시한다.

그는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채경을 신데렐라로 정식으로 임명하는 의식까지 치룬다.

 

그때 뭐 씹은 얼굴이 되는 율군을 보라!

 

율군도 바보는 아닌만큼,

 

채경이 신군을 위해 눈물을 흘린 이후로

두 사람이 가까와지는 걸 모를리가 없다.

 

신데렐라 의식도 그렇지만,

친정에 가기 위해 신군이 그럴싸한 명문을 만들어준 것도

율군은 알고 있다.

 

그는 혼자 삐져버린다.

 

미운오리새끼처럼 겉돌던 시절에 채경이는 자신의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틈에 백조가 되어

훨훨 날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신군과 친정나들이를 하는데,

그걸 구경만 해야한다.

 

아마 효린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율군은 채경을 피하기 시작한다.

 

나 삐졌어!

그래 니들끼리 잘 해봐라!

 

이런 심사가 엿보인다.

채경은 뭥미?할뿐이다.

신군이 냉대하면 가슴 아파하지만,

율군의 냉담함엔 그저 황당할 뿐이다.

그러니 더 화가난다.

 

율군의 첫번째 방해공작이 계란 투척 사건시였다면,

두번째는 승마클럽이다.

 

그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바로 효린에 대한 채경의 열등감이다.

 

또한 효린이 신군을 되찾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것도 힘이 된다.

 

난 율군이 실제로 효린의 존재가 신군에게 그렇게 대단하다고 믿고

틈틈이 채경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대는 건지,

아니면 그저 이간질을 위해 그런건지 그걸 잘 모르겠다.

 

그는 신군을 잘 모르니만큼 어쩌면

정말 신군이 좋아하는 건 효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화로 남편과 다툰 얘기를 하며 펑펑 우는 친구에게,

 

니 남편에겐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아.

그냥 헤어져!

 

라고 말해주는 아주 악질적인 친구임엔 틀림없다.

그가 사심이 없었다면 또 모르겠는게

율군은 아주 사심 만땅인 것이다.

 

 

그럼 그들을 바라보는 신군의 시선을 보자.

 

이상하게도 싸가지 왕자들은, 자기 영토내에 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여자를

라이벌로 여기는 남자가 쫓아다니는 걸 보면

갑자기 그 여자에 대한 기득권 내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버릇이 있다.

 

신군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싸가지 왕자와는 달리,

채경이가 실제론 율군의 정혼자였다는 아킬레스건도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도무지가

궁인지 학교 교실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어울려 친구처럼 지내고 있지 않은가!

 

채경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을 때야

율군이 어떻게 대하던 상관 없었지만,

 

생파에서 율군과 물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채경을 본 이후로

그는 경계경보를 희미하게 듣기 시작했다.

 

자연, 채경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신군은 늘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는 게 없다.

 

율군이 보기엔 많은 걸 가진 듯 보이지만,

실은 신군의 손은 비어있다.

 

그가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가지려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율군은 전혀 그런 신군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군이 화가나는 건,

율군과 채경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 그 자체보단,

그들이 궁에서조차,

아니 동궁전에서조차 친구처럼 지낸다는 사실이다.

 

동궁전이면 자신의 영역이다.

그 영역에서

감히 서열2위의 왕자가 황태자비를,

그것도 황태자 앞에서 친구처럼 대한다?

 

형수이자 황태자비를 바로 그 황태자 앞에서

채경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황태자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연, 신군에게서 태클이 들어온다.

 

감히 황태자비를, 그 남편 앞에서 이름을 부르다니

이런 건방진 쉐이!@@

 

아마 그런 감정은 오래 전부터 신군에게도 싹트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자연 마상 격구는 격렬해지고,

그 결과 낙마 사건도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채경이를 눈앞에서 율군에게 빼앗기는

상실감을 맛봐야했으니

신군이 열받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율군 입장에선 가뭄에 타던 가슴에 단비를 흠뻑 맞는다.

 

채경은 그저 오지라퍼로서 행동했을 뿐이라지만,

그거야 채경이 생각이고

 

두 왕자의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율군이 승리했다.

그리고 율군은 그 승리감에 취해서

의기양양해지고, 삐져 있던 마음도 풀린 모양이다.

 

 

신군이 홀로 태국에 가버린 건

율군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신군에 대한 그리움에 시들어가다못해

이제 병자가 다 된 채경을 위해

 

바오 뭐시기라는 나무한테 데려가기도 하고

정성껏 싸온 도시락을 먹이기도 하며

윌리엄 왕자를 함꼐 대접하기도 하는 등

 

어찌보면

신군이 비운 자리를 율군이 메꿔주고 있다.

 

내가 봐도 율군과 채경은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물론, 그 율군은 진짜 율군이 아니고,

상실의 세월을 보낸 이후의 율군이지만 말이다.

 

그때, 채경은 율군에게 참 중요한 말을 한다.

 

즉 신군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대체 그런 고백을 왜 율군에게 하는건데?

 

신군에게 해야하는 거 아닌가?

 

율군은 다지 뭐씹은 얼굴이 된다.

 

넌 내가 참 편한 모양이구나..

라고 말하는 율군은 애처롭다.

 

얼마나 내가 별볼일 없이 보이면,

내 앞에서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냐?

 

내가 널 이토록 좋아하는 게 전혀 안보이니?

오로지 신군만 생각하고, 오로지 신군 때문에

창백하게 병들어가는 채경이가

율군은 원망스럽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채경이 덧붙인 말이 핵심이다.

적어도 율군에겐 그렇다.

 

만일 너를 먼저 만났다면 널 좋아했을지도 몰라

 

 

이 말은 두고두고 율군으로 하여금

죽자고 매달리는 밧줄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

넌 원래 내 정혼자였다.

만일 나와 혼인했다면, 니가 지금 좋아하고 있는 건

바로 이 율이겠지?

 

니가 신이를 좋아하는 건,

그저 신이가 니 남편이라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지

그 인간을 좋아하는 건 아닌거지?

 

그렇다면 나에게도 희망은 있는거겠지?

 

다시 황태자가 되어

널 되찾아오기만 한다면,

넌 날 좋아할 수도 있는거지?

 

이런 당치 않은 꿈을 꾸게 만드는

결정적인 말을

너무나 경솔하게도 채경은 흘리는 것이다.

 

이윽고

채경과 율군은 실제로 황태자 부부가 된 양

신군이 없는 틈을 타서

귀빈을 함께 맞이하고 접대한다.

율군으로선 아마도 정말 자신이 황태자이고,

채경은 자신의 비라는 착각을 잠시라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착각에  자꾸 재를 뿌리는 게 또한 채경이다.

 

이건 뭐 틈만 나면 신군에게 문자질에 전화질이니..

그래서 보다 못해

율군은 은근슬쩍 실은 자기가 진짜 정혼자였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바보야,

니 원래 짝은 바로 나였어.

내가 바로 정통성을 가진 황태자야

넌 바로 나의 비가 되기로 되어 있었어,

내가 만일 너의 남편이라면

절대로 신이처럼 안해

그 나쁜 쉐이처럼

혼자 태국으로 날아가지도 않고,

전화를 해주긴 커녕

니 전화며 문자를 모조리 씹어버리는 그따위 짓도

난 안해.

그러니까 신이 보지마.

 

날 봐.

 

내가 진짜 너의 짝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