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7부- 황태자포스의 수난

모놀로그 2011. 2. 4. 20:45

누가 뭐래도 황족이요, 황태자로서 평생을 살아온 신군이

호화로운 동궁전을 떠나

 

지극히 평범한 어느 가정으로 들어갔으니 당연히 그는

참으로 이질적으로 보인다.

 

내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처가집에 처음 오자마자 자칫하면

거리에 버려질 위험은 겨우 모면했지만,

 

이어지는 신군의 황태자로서의 포스 수난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딴엔 꼿꼿한 로얄 걸음걸이로 비좁은 현관을 통과하시는데,

전형적인 서민의 현관에 그 걸음걸이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뿐이랴, 대문에선 쫓겨날 뻔하더니,

현관을 통과하기도 힘들다.

 

신군에게 신발을 벗으라는 것이다.

스탈 구기면서 겨우 신발을 벗었더니

이번엔 쿠션까지 빼앗아

로얄 개폼이 박살난다.

 

이렇듯, 여러차례 꺠지고 난 후에

그는 이제 방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해야한다.

 

딴엔 진수성찬이라고 잔뜩 차려놓았지만,

물론 신군의 입에 맞을 리가 없는

이른바 서민적인 음식들이다.

 

그는 밥알만 세고 있는데,

그나마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먹거리는 그래도 밥 정도인가보다.

 

그래도 와이프랍시고

조금은 신군을 아는 채경이 반찬을 챙겨주는 모습이 재밌다.

 

신군이 채경의 집을 찾은 것은,

그리 간단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채경이 친정에 가고 싶다고 하고

그 바램을 이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비중 있는 건,

다름 아닌, 채경이라는 아이를 더 알고 싶다는 욕망이

이면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서, 이제 신군의 채경에 대한 관심은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또한 그게 전부도 아니다.

 

갑자기 생소한 세계의 아이가 자기 세계에 들어왔다.

그 아이에게 관심이 간다.

그래서 그 아이가 속한 세계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 세계는 또한, 그로선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단순히 채경의 세계라서뿐만 아니라,

그에겐 채경을 통해서 자기가 미처 알지 못했고,

알려들지도 않았던 다른 세계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도 약간은 발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욕실에서 치솔들을 신기한 듯 만져보는 장면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대개 누군가가 좋아지면, 혹은 관심이 가면

그 사람의 세계를 알고 싶어한다.

 

그러니 결국 신군에게 서민 가정의 안방까지 진출하게 한 건

채경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졌음이 가장 클 것이다.

 

그는 물론 매우 이질적이고,

길바닥에 버려두고 지들끼리 들어가려던 장인 장모는

이제야 황태자 사위가 실감나는지,

갑자기 황송해서 몸둘 바를 모른다.

파격적으로 안방을 내어줄 생각까지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대문간에 버려질 뻔한 황태자는,

특별대우는 말아달라는 주문을 한다.

 

그때 이미 특별대우를 받을 꿈을 버렸나보다.

 

이건 농담이고,

그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가정을 보고 싶다고한다.

 

하지만 가장 재미 있는 장면은

갑자기 능글맞아진 신군을 보는 것이다.

 

그는 채경과 같이 방을 쓰겠다고 선언해서

채경을 포함한 그녀의 가족들을 놀라게한다.

 

뭘 그렇게 놀라시나?

 

부부간인데 한방 쓰는 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하긴, 신군으로선 파격적인 행동이긴하다.

신군은 채경이가 19년을 살아온 그녀의 방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기도 그 나이또래 아이들처럼 자그만 방에서

침대를 가지고 영역 다툼을 하는 놀이가 하고 싶어졌나보다.

 

채경의 방에 들어간 신군은 아닌게 아니라 좀 당황스럽긴 하다.

이건, 무슨 방이 자기 침대보다 작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그를 위로하는 게 눈에 뜨여 재빨리 가슴에 품으니

바로 인형이다.

 

신군은 그저 인형만 보면 사족을 못쓴다.

그렇게 거만하고, 그렇게 까탈스러운 신군이

인형만 보면 얼른 집어들어거 가슴에 꼭 안고 그제서야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걸 보면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정말 신기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19세, 혈기 왕성한 나이의 청년이 인형만 보면 좋아죽으니

어찌 우습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