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궁

궁- 효린의 꿈과 황태자의 혼례

모놀로그 2011. 2. 1. 09:43

효린은
신군의 여친이었다.

상대가 황태자기에,
자연히 함께 있는 모습이 외부에 노출되면
파파라치들의
좋은 먹이감이 된다.

그건 신군에게도 난감하지만
무엇보다
재벌의 딸인양 행세하던
(그녀가 직접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지만, 그렇게 오해하게끔 한 것도
사실이고, 그녀가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순수성을 의심한다.)
그녀의 정체가 드러날 염려가 있다.

파파라치들은
그녀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당장 어떤 인물인지까지
파헤칠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신군의 비밀 여친 노릇에 만족하고 있었다.

유명 영화배우 출신으로
두 왕자를 모두 홀려서
자신에게 홀릭하게 만든
율군의 어머니처럼

그녀도
일단 유명 발레리나가 된 후에 두고보자
이런 심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황태자의 상대로는 너무 처지는 형편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그런데 난데 없이
황제의 건강 악화로 황태자의 혼인 문제가 불거지고,
그녀는 당시에
신군의 청혼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지만,

문제는 그녀의 거부하는 말들이
신군에겐 심히 상처가 될수도 있는,
그녀를 순순히 포기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냥
우린 아직 어린데..라던가,
난 아직 그럴 준비나 처지가 못되는데..라고 말하면서
어정쩡하게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혹은 보다 진솔하게 거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대책을 강구해야했을 것을,



그녀는
겉만 번지지르한 말들.
신군의 청혼을 거부하는 것으로 충분히 들릴 수 있는,
적어도 그렇게 해석되는 말들로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오랜 우정을 그런 걸로 변질시키고 싶지 않아
(난 너랑 결혼하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어.)

게다가 궁의 답답한 생활..어쩌구 저쩌구는 나에게 맞지도 않고,
(난 황태자비 같은 거 별로 하고 싶지 않아.답답한 궁 생활은 너나 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무엇보다 너도 알다시피 난 유명한 발레리나가 되는 게 꿈이야
(난 너와 함께 하는 인생보다
내 꿈을 이루는 게 더 중요해. 니가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자리보다 내 꿈이 차지하는 자리가 훨씬 커~!)


결론적으로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너와 결혼하는 것으로
내꿈을 망치고 우리 우정을 망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난 너와 친구일 뿐이지 결혼 상대로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너와 결혼하는 것으로 내꿈을 망친다니 그건 정말 싫어~!)

분명히 신군이
너 아니면
다른 여자와 억지로 결혼해야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음에도
그녀는 저런 식으로 대꾸하는 것이다.

난 그녀가 저 말을 할 때
입이 딱 벌어졌다.

신군에겐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군이 순순히 그녀를 포기한 것도 무리는 아니며,

하필 그 순간에 채경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더이상 심도 있게 대화를 주고받지 못한 것도
효린 입장에선 비극이었다.

그럴 듯한 저 말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그녀는
그 순간에는 멋지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엿듣고 있던 채경이도 그녀를 멋지다고 감탄한다..)


명색이 남친의 입장에 대한 배려나
(그것도 보통 남친이 아닌 황태자라는 특수한 입장의 남친인데..)
그의 심정은 전혀 헤아리지 않는 매정한 말들이며,
그와의 사이에 줄을 긋는 말들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그럴싸하게 치장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셩격 같다.
그러니 파출부의 딸이라는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재벌들과 어울리면서 명품으로 몸을 감싸고
평민과는 어울릴 수 없다는 듯 고고하게 행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혼인 얘기가 불거지기 전에

그녀와 채경이 복도에서 서로 몸이 부딪히는 장면이 있다.

 

 

 

 

효린과 채경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인가보다.

 

말하자면,

효린은 그 학교에서도 유명한 존재였지만,

이름없는 수많은 평범한 학생 중의 하나였을 채경과

몸이 잠깐 닿았던 것이다.

 

 

 


그때 효린이 보여주는 건
황태자급의 반응이었으니..

마치
이 지저분한 서민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이런 표정으로 경멸하듯, 한수 아래의 세계를 내려다보듯
채경을 힐끔 쳐다보는 것이다.
아예 그녀와 닿은 부분을 손으로 털기까지 한다.


그건 골드 3인방과 비슷한 정신 구조를 가진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골드 3인방과 같은 반응을 보일 처지도 아니요,
지저분한 서민이 감히 내 몸에 닿다니
아주 볼쾌하다는 시선을 던질 위치도 아니었다.

 

어느 학교에나 특수 계층이 있다.

더더우기 그 학교엔 황태자가 다니고 있다.

 

그 황태자가 남친이고, 그 황태자의 재벌 친구들을

뒤에 거느리고 있는

 

미모와 재능이 뛰어난 효린은

아마 어떤 학교에던 반드시 존재하는 이른바

퀸카였나보다.

 

그녀는 신군의 청혼을 가볍게 거절하고

그 순간엔 자기 자신에게 지극히 만족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말로는 그랬지만

이후에 은은히 떠도는 소문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걸 보면 말이다.

 

즉, 황태자가 곧 혼인하는데,

그 상대는 같은 학교의 학생이라는 속삭임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린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멋지게 거절해도

설마 신군이 자기를 순순히 포기하고 단숨에 자기에게 등을 돌려

다른 여자에게 가버리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 소문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은은하게 떠올리는 그 미소는,

 

그러면 그렇지..

이 민효린이 황태자가 청혼앴다고 해서

기다렸다는 듯 네발로 기어서 달려간다고 생각하면

그건 신이, 니가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거야.

물론 난 가볍게 튕겨주었지만,

니가 날 두고 어디가겠어?

아마도 황실 어른들에게 나 아닌 다른 여자와는 죽어도

혼인 못한다고 우겨서 결국은 내가 낙첨된 모양이군?

하지만 곤란한데?

 

 

 

 

 

우리 사이는 대학가기 전까진 비밀로 하기로 했자나?
난 지금 중요한 콩쿨을 앞두고 있어.

지금 내가 너와 혼인하는 따위의 일에 신경을 쓸 여력이 있냐고~!

 

이런 말을 해주려고

내심으론 만족하면서도

거만하게 따진다.

 

여전히 그녀는 마음에도 없이 튕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녀는 한방 얻어맞는다.

 

신군은 그녀처럼 멋을 부릴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에겐 너무나 절박하고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멋을 부리고 있다.

 

그 갭을 효린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신군은 알고 있다.

 

 

 

 

그는 참 미묘한 표정으로 효린을 바라본다.

오랜 시간, 단 하나의 자기편이라고 믿고 있던

효린이 갑자기 타인처럼 여겨지는 것이

스스로도 원망스럽다는 듯,

그러나 분명히 줄을 긋는 단호함을 보이고 있다.

 

효린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다.

 

신군에게 갑작스런 혼인이라는 과제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을 가볍게 취급하고 멋을 부린 자기가

이미 신군의 인생 계획에서 제외되었음을 그 순간에 꺠닫는 것이다.

 

그것도, 얼마 전에 자기 몸에 닿은 것조차 불쾌하게 여겼던

그 서민에게 신군을 빼앗겼음을

그녀는 알아야했다.

 

 

 

 

입을 딱 벌린 효린의 놀라는 표정이 애처롭다.

 

신군의 혼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그녀는 그녀가 말한 자신의 꿈을 위해

콩쿨에 참가하고 있었다.

 

티비에선 한국의 황태자의 혼례가

생중계되고 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남친이

정말 황태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처럼

놀란다.

 

 

 

 

그녀는 혼란에 휩싸여서,

자신의 꿈을 펼칠 로얄 발레스쿨이라는 커다른 무대와,

티비에서 이제 전혀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신군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의 곁에는,

일찌기 그녀가 경멸했던 여자애가 황태자비로서

대우받으며, 그의 짝이 되기 위해 다가가고 있다.

 

 

 

 

갑자기 한대 얻어맞은 듯

효린은 알게 된다.

 

신군을 잃었음을..

신군이 다른 여자와 혼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다.

 

 

 

그래서 효린은 자기가 말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제 막 무대로 나가야함에도

그리고 그 꿈이 이뤄지려고 하는데도

그것이 조금도 기쁘지가 않다.

 

아니, 기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그녀는 그 대단한 꿈을 버리고

귀국을 결심하는 것이다.

 

신군을 되찾는 것이 더 당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