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앤티크 촬영 현장을 보다
좋아하는 배우는 눈으로 보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직접 본다는 건, 어떤 매체를 통해 보는 것보다
훨씬 입체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배우를 생각지도 않게
그것도 바로 우리 동네에서
그것도 촬영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신기한 우연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우연이 내게 있었다.
앤티크 촬영을 바로 우리 동네에서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신기한 건, 단지 앤티크만이 아니라,
키친도, 하다못해 궁의 어떤 씬까지도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머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앤티크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엎어지면 코닿을 곳,
다시 말해서 내가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촬영을 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몇날 며칠을 그랬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앤티크 촬영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촬영의 막바지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2007년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다.
난 , 내 생애 크리스마스 이브를
좋아하는 배우와 함께 보낸 건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농담삼아 말하곤 했다.
난 주배우를
앤티크 촬영 현장에서,
그리고 돈주앙 공연이 끝난 후 커튼 콜에서 각각 봤지만,
엄밀하게 내가 본 건
김진혁과 주주앙이다.
말하자면, 인간 주지훈이 아니라
어떤 배역을 맡아 분장한 모습인 것이다.
배우의 평소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싸인회가 가장 적격이다.
하지만 주배우는 내가 팬이 된 이래 싸인회를 한 적이 없는걸로 안다.
그래서 난 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앤티크 촬영이 바로 코앞에서 이뤄지고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난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임에도
무작정 가까운 곳에 있다는 촬영 현장을 찾아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성탄 자정 미사가 끝날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둡고 추운 밤이었다.
말이 가까운 곳이지, 대체 어디서 그 촬영 현장을 찾는단 말인가!
바로 우리 집 앞이 아닌 담에야 막상 그 촬영 현장을 찾아낸다는 건,
무턱 찾아나서겠다고 밖으로 뛰쳐나가고보니
한강에서 바늘찾기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가끔 한강에서도 바늘을 찾을 수가 있다.
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떤 골목길을 택했는데,
우리 집으로 가기 위한 수많은 거리 중의 하나인
그곳에서 바로 그 현장과 마주친 것이다.
하지만
난 이내 실망했다.
왜냐면 그날은 실내 촬영이라는 것이다.
썰렁한 거리엔 인적이 별로 없고,
물론 배우들도 없다.
스탭인 듯한 사람들만 몇몇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다른 배우들을 봐서 뭐하겠는가.
주배우만 보면 되는거지.
그 촬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은
어떤 이층집이었다.
주민들의 말로는, 빈집이라고 한다.
낡은 2층집은 사람이 오래도록 살지 않은 집답게
폐가의 냄새가 물씬했다.
하얀 담벽은 담쟁이 덩쿨이 휘감은 채로
말라버려서 더더욱 황량했다.
적어도 낮에 봤다면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땐 조명이 그 집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살수차가 비를 뿌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집은 뭔가 특별해보였다.
당연하지.
바로 그곳에서 촬영을 하고 있으니 특별할 밖에..
앤티크의 마지막 장면이 바로 그 집에서 벌어진다.
즉, 유괴범과의 대결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주민들의 말로는,
그곳에서 며칠을 촬영했다고 한다.
주지훈을 그들은 동네 청년을 보듯이 싫증나도록 봤다는 것이다.
그것도 코앞에서 말이다.
촬영팀은 그곳에 진을 치고
며칠이나 머물렀던 것이다
우라쥘!
아침부터 밤까지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하필 마지막날, 그것도 밤에, 그것도 실내 촬영하는 날을
골라서 간 것이다.
낡은 집 한채만 덜렁,
조명 아래 비를 맞으며 서 있을 뿐
그 밖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주배우가 현관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내내 그렇게 현관 밖에 서 있었다.
그 집은 오래 된 주택들이 그렇듯
대문에서 층계를 올라간 곳에 현관이 있다.
진혁이 크리스마스에 산타 분장으로 케잌을 배달한 집도
바로 그곳이다.
그때도 진혁은 계단을 올라가
현관 앞에 케잌을 놓고 간다.
현관이 계단을 올라간 곳에 있었기에
그나마 난 주배우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실내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그렇게 간간히 현관 밖으로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강렬한 조명 덕분에
진혁의 분장을 한 주지훈을 확실하게 볼 수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져간 디카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포기했다.
핸폰도 몇번이나 주물렀지만 또한 포기했다.
그는 너무 멀리 있었고,
밤이었기에 플래쉬가 터질 것이다.
그건 촬영에 방해가 되는 실례라고 난 생각했다.
새벽2시가 넘어 3시를 향해 가는 시각임에도
주민들은 오히려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난 그들에게 이런저런 촬영 후기담을 주워 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별로 볼 것도 없었다.
잠시 쉬다가 촬영 사인이 떨어지면 살수차는 비를 뿌렸고,
그 빗줄기는 조명 아래 운치있게 쏟아진다.
한 겨울에 비라니..ㅋ
주배우는 현관을 들락거릴 뿐이다.
솔직히 지루해서 결국은 그냥 돌아오고 싶었고,
실제로 그러려고 하던 참에
휴식 시간인 듯,
잠시 주배우가 건물 밖으로 나온 기억이 난다.
그는 진혁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흰 셔츠에 검은 조끼와 바지,
게다가 역시 검고 긴 머리와, 수염의 분장 그대로이다.
그래서인가, 그가 주지훈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 간간히 올라온 사진을 통해서 봤던 진혁이라는 인물이었을 뿐이다.
평소 내가 아는 주지훈과 닮은 데가 전혀 없었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꺼내 톡톡 치면서 자기를 보러온 듯한
누군가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먼 거리에 어두웠지만,
그가 웃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는 내가 흔히 들어온 대로
명랑하고 활기차게 보였다.
피곤한 밤샘 촬영인데도 그는 생생했다.
꽤 추운 날인데도 그는 비에 젖었을 그 옷차림 그대로도
전혀 끄덕하지 않았다.
그는 꽤 긴 시간을
밖에 서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때의 상황이나 모습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저 현관 앞의 조명 아래
진혁의 모습으로 서 있던 주지훈이다.
검은 머리와 콧수염이다.
그리고 웃고 있던 모습이다.
그는 촬영하는 게 즐거운 듯 보였고,
참을성 있게 그 추운 날밤
수시로 현관 밖으로 나와서
그렇게 서 있었다.
그게 전부이다.
하지만,
앤티크 촬영 현장을 본 건,
내가 본 유일한 영화 내지 드라마 촬영 현장이다.
난 그 전으로나 이후로도
그런 건 본 적이 없다.
별로 보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성탄 이브에, 덜덜 떨면서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다름 아닌
주배우의 앤티크 촬영 현장을,
바로 내 홈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었다는 추억은
남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