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주지훈

주지훈- 인연

모놀로그 2011. 1. 29. 17:49

21세기의 이 삭막하면서도 변화무쌍하며
선정적이고 일회적인 시대 속에 휩쓸려다니는
티끌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 중 하나인
내가,

또한
수많은 드라마가 범람해서
깔려죽을 정도이고,

수많은 매력적인 배우들이
극중에서
자기를 사랑해줄 사람들을 기다리는
이 시대에

어떤 배우가 눈에 들어오고,
그를 좋아하고,
그에게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매력을 발견하는 것도
인연이겠지?

실생활에서 만나서 만질 수 있고
직접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건,

극중에서 캐릭터로 만나게 되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세상에서밖엔
만날 수 없는 배우이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바탕엔
이해와 소통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진 개성과 매력과 진정성의 코드가
나와 맞을 때,
그게 내 눈에 들어올 때,
속속들이 그것들이 내 속에서 나름대로 체화되어갈 때,

그 사람을
마치 내 가족처럼, 내 친구처럼, 내 애인처럼
친밀하게 느끼고

혹은 전시회장에서 나를 매혹시키고 끌어들이는
한 장의 그림처럼
납득하고 이해하게 될 때,

그는 내 속으로 들어온다.

그건 어찌보면 황당한 일이지만
한편 참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그렇게 많은 즐거움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통해서
영혼을 정화시키고,

어떤 캐릭터를 통해서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를 사랑하게 되고,

아무런 댓가도 주어지지 않음에도
내 가족처럼
내 친구처럼
내 연인처럼
아끼고 그의 장래까지 염려하고
그 자신조차 미처 모를
그의 갖가지 숨겨진 장점을 속속들이 찾아내서
내것으로 만들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

그것은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몇 안되는 기쁨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주지훈은 대중적인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납득하게 된다.

그것은 오히려 나보다 더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깨우쳐준 사실이다.

난 워낙 둔한 인간이라 누군가 그것을 께우쳐줄 때까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매니아를 거느릴 타입이다.
얼핏보면
대중적일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의 외모며 그의 연기 스타일에서
결코 그가 대중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면서,
난 점점 더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내가 그에게 바라던 것들을 하나씩
포기해나가는 아픔도 주었다.


난 그를 모르고,
그 역시 나를 모르는데,

어떤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인연을 맺는다.

적어도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통해선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가 자기의 영혼을 실리고 온갖 심혈을 기울여서
창조해낸 인물을 인정하고 그 인물을 통해서
잠시라도
나 자신을 돌아보고,
단 일분이라도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것으로
우리는 이미
어떤 인연을 맺고,
그것으로 소통을 할 수 있기에
배우는 몰라도
그의 창조물은 날 알기 때문이다.
그의 그 창조물을 난 재창조하고,
그런 과정에서
우린 아주 친밀하다.

세상엔
수많은 배우들이 있고,
수많은 캐릭터들이 있는데

유독 그가, 그리고 그의 캐릭터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다면

그것만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린 어떤 관계가 성립된다.

세상에선 그것을
배우와 그의 팬이라고 부른다.


세상에서 무엇이라고 부르건간에
인연이란 그렇게
영역이 넓다.

그 드넓은 영역에서
내가 한 자리를 내어준 그에게
난 애착을 느낀다.

내가 그를 알아보고,
그러다보니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이 보이고,
그것을 통해
그라는 사람이 보인다는 것은
인연의 신비이다.



그 인연의 신비를 난 존중한다.
설사
내가 시간이 흘러
그를 잊게 되는 날이 온다 할지라도,

그는 한때 나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평생을 내 기억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