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마왕

마왕 4부- 순기의 출소 파티와 승하

모놀로그 2011. 1. 26. 13:06

 

4부에서, 승하는

순기의 출소 기념 술자리에 참석하는데,

그 장면은 상당히 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내가 오승하가 무섭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 파티에서의 모습이다.

그는 대체 거기에 왜 있는 걸까?

 

오수의 말대로,

 

'저 사람이 왜 여길 와?'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승하의 행적은 도무지가 수상쩍고 말이 안되는데,

또한 그럴싸한 이유가 있으니,

 

바로 그 자리의 주인공인 순기가 초대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주 완벽한 타당성을 가지고 그 자리에 당당하게 참석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를 자세히 관찰했다면

정말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오수의 친구들은 잠시 어색해하긴 하지만,

이후론 있는 듯 , 없는 듯 고요하게 앉아 있는 오승하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

 

물론, 오수는 제외하고..

오수는 그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그가 거슬리고, 그에게 자신의 사적인 일면,

그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의 과거의 흔적인 그의 친구라는 무리를

다름 아닌 오승하에게만은 보여주고 싶지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오승하는 처음엔

일일히 인사도 나누고,

웃으면서 덕담도 던져주지만,

아니, 남들이 듣기에 덕담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을 사실로 들려주지만,

 

그 이후론 도무지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며

물만 가끔 들이킬 뿐이다.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배합은 참으로 묘하기 짝이 없다.

 

 

형사가 있는가 하면,

사채업자가 있다.

 

사실, 그 자리에 석진이라는 인물,

재벌의 비서를 하고 있는 말끔한 엘리트 넥타이족이

없다면 그야말로 3류 인간들이 모인 3류 술자리일 것이다.

 

그런데, 석진이라는 인물이 또한 그 술자리에서

소심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태도로 앉아 있다.

그는 바로 그런 3류 술자리에 자신이 끼어 있는 것이

불편한 게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렇게 당당하게 이 세상의 엘리트족이라고

고개를 치켜들고 다니는 위인도 못되는 것 같다.

 

개성이 강하고, 다들 한 자락씩 하는 듯한

인물들로 구성된 술자리이지만,

 

무엇보다 그 자리를 지배하는 건 바로 순기라는 인물이다.

 

아니, 그 술자리의 너절함과 삭막함, 어색함, 불편함을

순기가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기라는 인물을 석방시킨 오승하는,

싸늘하게 그들의 행태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승하는 대체 왜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런 자리에 참석했을까?

 

너절한 대화가 오가고,

3류 인생들끼리 벌이는 주먹다짐으로 막을 내리는 그 술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키면서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그 광경을 빤히 지켜보는 기분나쁜 존재인 오승하는

대체 왜 거기에 있는 것일까?

 

 

난 그가 굳이 그 자리에 참석한 이유를

그 모임에서

그 무리들의 관계도와,

어디를 공격하면 좋을까를 탐색하기 위한 전초전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승하는 많은 지식을 얻어간다.

 

첫째로

김대식은 심한 기침을 하고 있다.

 

 

둘째

석진은 수상쩍은 여자를 뒤에 숨기고 있는데

그것을 극구 부인하며 오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세째,

그 여자를 직접 목격한 인물은 바로 협박의 달인 순기이다

 

이렇듯 승하는 그 자리에서

좋은 먹이감을 그날 듬뿍 수집한 것이다.

 

물론 그날 수집한 그 자료들은 잘 정리되어

설계도의 밑그림을 더 디테일하게 그리는 것에

일조했을 것이다.

 

계획은 재빨리 세워지고,

명령은 하달되고

빨강 봉투와 타로 카드, 그리고 편지와

인형 등등이 숨가쁘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어진 두번째의 공격이 대식인 걸 보면

역시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법에 대한 준열한 심판을 가한 후에,

이번엔 다시 사적인 영역으로 돌아와서

오수의 주변을 공격하는데,

 

김대식을 선정한 건,

그가 이제 곧 사채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고 있을 무렵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그는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박차를 가할 것이고,

 

그것은 곧 소라 엄마 같은 사람들을

쥐어짤 것이 틀림 없으니

최상의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김대식은

왕년에 정태훈 사건 현장에 있던 오수의 친구이다.

 

국회의원에 거부의 아들인 오수가

너절한 애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대장 노릇을 할 때

그 무리에 섞여 있던 아이 중 한 명인데,

 

왜 오수가 그런 무리들과 어울렸는지,

단순히 반항하기 위해서라도

 

대개 상류층 자제들은 비슷한 부류와 어울리기 마련인데

오수는 유독 서민층에서도 하류층과 어울리는 게 이색적이다.

 

그 중 김대식과는 유별나게 가깝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오수의 똘마니 중에서

석진과는 다소는 으례적인 관계로 보이고,

순기는 그 사건을 빌미로 돈이나 뜯어내는 말썽꾼인 반면에,

 

사채업자인 김대식과는 죽이 잘 맞는 친구로 성장했던 것이다.

 

형사와 사채업자라..

기묘한 배합이다.

 

하긴

극과 극이 통한다고

형사와 조폭이 종이 한 장 차이고,

재벌과 최고의 마피아도 밀접한 관계이다.

 

오수가 김대식과 친구이듯,

강의원은 조폭인 마빡이라는 사람을 골치아픈 일에 동원하는 걸 보면

재미 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최상층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최하층이라고 할 수 있는 조폭과 긴밀한 것은

 

뭐 꼭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대식과의 우정은 남다르다.

김대식은 사채업자로서 약자인 소라 엄마를 괴롭히긴 하지만

(그런데, 돈을 빌리면 갚아야하는 거 아닌가?ㅋㅋ)

 

비교적 싸나이답고 사리에도 밝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오수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뒤로 호박씨까는 타입의 석진이나,

약점이나 물고 늘어지며 돈을 뜯어내는 순기와는

차원이 다른 우정을 나누던 사이다.

 

아마 그래서 김대식이

두번째 희생자로 선정되었으리라.

 

약자에게만 가혹하게, 그것도 그릇되게 적용된

법에게 칼을 들이민 후에,

 

다음 순서는

바로 강오수에게 자기가 맛본 슬픔,

 

사람을 잃는 아픔을 맛보게 해준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친구라도 가족만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