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마왕

마왕 2부-풀장에서 승하와 오수의 대화

모놀로그 2011. 1. 26. 09:28

2부의 수영장씬을 보면서

문득

승하와 오수의 대화가 참 재미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긴,

승하와 오수의 대화는 항상 그런 식이지만.

 

다시 말해서,

 

오수가 당면한 사건을 두고 형사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승하는

그 사건의 본질을 두고 전지적 시점, 혹은 현재 시점에서 바라본

과거 시점을 반추하며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오수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승하와 대화하는 중

늘 오수가 밀리는 건

바로 그 오수의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기억 속의 사건을

승하는 곧바로 응시하며

그것을 자극하는 발언을 주구장창 내뱉기 때문이다.

 

둘은 실은 전혀 다른 대화를 하는 셈이다.

 

그러니 둘의 대화는 겉돌 뿐이고,

실은 정답을 말하고, 사실을 말하는 승하의 말들이

오수에겐 신경에 무지하게 거슬린다.

 

권변의 죽음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승하는 말한다.

 

'인간의 기억은 제각각이니까요'

 

인간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지금 승하가 말하는 건

권변 사건이 아니다.

 

권변 사건의 이면에 있는 진실,

그 사건의 본질,

 

그리고 바로 오수의 눈 앞에 서 있는 자신,

 

모든 것의 해답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게 분명한 정태훈 사건으로 인한

한 집안의 몰락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난 오로지 그 사건만을 기억하며,

다른 건 모두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며,

그래서 오늘날 내가 니 앞에 서 있고,

 

모든 것의 해답은 바로 니 앞에 서 있는 나인테

넌 그새 까마득히 그 사건들을 잊어버리고

뻔뻔스럽게도 형사 노릇을 하고 있구나.

 

니가 기억하는 것, 혹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것

내가 기억하는 것, 절대로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들처럼

 

우리의 기억은 서로 다르며,

그게 바로 우리의 비극이지.

 

'강오수 형사님은 늘 사실만을 말하십니까?

인간은 자기가 유리하기 위해선 늘 조금씩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난 사실만을 말합니다

내겐 거짓말을 해야할 이유가 없거든요"

 

강오수 당신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자기가 유리하기 위해서 엄청난 거짓말을 하였고,

그래서 니가 상상도 하지 못한 비극이 일어났다.

 

지금 니 앞에 서 있는 난

너의 과거의 산물의 실체이다.

너의 죄가 만들어낸 실체이다.

그래서 난 니가 창조한 사실이다.

 

난 지금 니 앞에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데

넌 알아보지 못한다.

 

네겐 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으니까.

사실을 말할 용기도 없으니까.

 

그 수영장의 의미심장한 대화를

오수가 이해못한 것도 당연하다.

 

그는 권변 사건의 증언을 확인하러 갔지만,

승하는

그 사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그가 깨우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니

두 사람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아직은

싱싱한 승하의 계획,

이제 막 시작해서 조금만치도 훼손되지 않은

그의 증오,

 

조금만치도 죄책감이 없는 순수한 복수심으로

충만한 승하와

 

그런 승하를 무방비로 상대해야하는 오수의

대결 중

첫번째 대결인 수영장씬은

그렇게

 

서로 다른 시점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 다른 세계에 서서

주고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