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13부-조동섭의 공판에서
조동섭의 공판에서,
승하가 변론하는 내용을 들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세상사가 아이러니하다.
그는 결국 오수를 변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사실을 승하는 전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조동섭은 애초에 권변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흉기도 조동섭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실수였다..
따라서 그는 무죄이다.
그 공판엔 예전의 그 사건에 관련된 자들이
빠짐없이 모여서
다름 아닌 그 사건의 피해자인 정태성의 입으로,
그 사건의 전말을 듣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인생이란 어찌보면 참 무섭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않은 작은 해프닝이 일어난다.
자신의 형을 죽인 인간들을 무죄로 만들어준 변호사의 아들이,
이번엔 자신을 향해서
외친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무죄가 될 수 있어~!!!!!'
이때,
난 오승하가 어떤 심정일지 참 궁금하다.
일단은 오승하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면 이때 오승하를 클로즈업한 카메라가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대개, 카메라는 피사체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그래서, 카메라가 마구 흔들리는 건,
바로 카메라가 집중하고 있는 사람의 심리가 현재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요동치는 오승하의 심리의 기반이 뭔지는 의문스럽다.
아마도 변호사 아들의 외침이 그에게 어떤 종류의 반향을 일으킨다면,
그건 단지 그것이 오래 전 자신의 입에서 나왔던 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소라 엄마의 원망에 가득찬 절규를 들었을 때처럼,
어떻든 착잡한 마음이 잠시 오승하를 흔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그는 언제나 그렇게 흔들리니까.
마왕이 방영되던 무렵,
시청자들은 그렇게 흔들리는 오승하에게 불만을 품었었다.
해인에게 끌리고,
피해자들의 원망과 눈물과 절규에 흔들리는
그에게
악역이면 악역답게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마왕이라는 드라마와, 오승하라는 인물의
본질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불만이다.
오승하는 악역이 아니며,
마왕은 복수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승하는 단순히 살인을 즐기는 싸이코패쓰가 아닌만큼,
당연히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 속 깊숙히에선 고통을 느끼고 있다.
해인이 말하듯,
인간들이 더이상 악을 선택하지 않고,
한번이라도 사과를 함으로써
자신으로 하여금 살인자가 되지 않게 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너무나 쉬운 길을 포기하고
어려운 길로 간다.
하지만, 실은 인간들이 선택하는 것이 가장 편의적이다.
그들에겐 그게 쉬운 길이다.
왜냐면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내가 수없이 언급했지만,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
그것이 곧 승하의 악업이 되는
묘한 인과 관계 때문에
승하는 이중으로 고통받아야하는 것이다.
그들의 선택으로 복수를 완성하고 미소지으며
박하사탕을 먹지만,
동시에 그때 그의 눈은 항상 젖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또한 승하는 언제나 그렇게 흔들린 후에
더욱 강해진다.
본능적인 방어이다.
흔들리면 안되니까.
그러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순간 그의 표정은 다시금 냉엄해지는데,
그것은 마치 오수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휩쓸리려다가
마음을 다잡고 싸늘해지는 것과
참 비슷하다.
변호사 가족들의 모습은 결국 자신들의 모습이다.
그는 오래 전 자기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가해자들의 편의적인 발상을 봐야한다.
그래서 그가 느끼는 연민엔 혐오감이 있고,
그가 느끼는 혐오감엔 분노가 있다.
그래서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착잡한 상념들을 한꺼번에 정리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