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너 내 손에 잡히면 뒤진다
내방에서도 일출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난 매일같이 눈빠지게 일출만 기다린다.
남들은 일부러 동해까지 가서 본다는데,
그걸 내 방에서,
그것도 침대 위에 누워 하품을 하며 볼 수 있다니
세상에 그런 놀라운 일이 또 있냔 말이다.
나같은 인간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대학 시절 설악산에 갔었다.
새벽 5시에, 친구들이 날 억지로 꺠웠다.
일출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대체 그걸 왜 잠도 못자고 봐야 하는데?
라고 투덜대며 억지로 끌려갔다.
가는 내내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친구뇬들이 나에게 넌더리가 났을 것이다.
ㅋㅋ
왜 깨워?
일출 보러 가자.
일출을 왜 봐?
여기까지 왔으니 일출은 봐야지
글쎄..그걸 왜 봐야하는데??
그렇게 보고 싶으면 니들이나 보러 갈 일이지
왜 날 깨우고 난리냐고오~~~~~~
하긴 설악산도 그렇게 끌려갔다.
우리 설악산에 놀러가자.
콘도도 준비됐어.
거길 왜 가는데?
설악산 별로 안보고 싶거등?
니들이나 가
그러면서 억지로 끌려간 설악산이다.
갔으니
등산해야한단다.
등산?
오마이 갓~!!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세 가지 있는데,
그 첫째가 제사지내는 것,
둘째가 등산하는 것,
세째가 미끄러운 길이다.
그래서
난 산 근처엔 얼씬도 안 하고,
스키장을 제일 무서워한다.
길이 미끄러운 것도 무서운데,
미끄러운 가파른 언덕을 일부러 미끄러지려고
스키장까지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ㅋㅋ
그래서 등산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내 입에선 온갖 저주의 말들이 쏟아지고,
그러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아무튼 남들이 간다는
코스는 정상까지 가긴 했다.
그때 난 등산이라는 걸 처음 했었는데,
너무나 힘이 들어서 중간에 만나는 사람들,
즉 내려오는 사람들 붙잡고
아직 멀었어요?
그럼 그들은 한결같이 답한다.
다 왔어요.
그 말에 힘을 얻어 다시 걷다보면
다 왔다는데도 여전히 그 길이 그 길이다.
그래서 또 내려오는 사람에게
얼마나 남았나요?흑흑
이제 다 오셨네요
이러면서 그들이 말한 다 왔다는 그 등산길을
그로부터 장장 한 시간은 더 걸어 올라갔다.
물론,
난 다 왔다고 했던 그 사람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었다.
하지만 등산 가서 힘들고 멀다고 툴툴대는 내가 비정상이지.
이토록 이상한 인간인 내가
일출을 보겠다고 낙산사로 끌려가는 동안
얼마나 난리를 쳤겠는가!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게 있으니
바로 바다이다.
낙산사까지 끌려가는 동안 내내 생난리를 치던 내가
겨우 잠잠해졌으니
바로 낙산사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보았을 때이다.
말로만 듣던 초록빛 바다였다.
어찌나 맑은지 저 깊이까지 들여다보였다.
그날 우린 일출을 보지 못했다.
이 일출이란 놈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날이 조금만 흐려도
일부러 그거 보려고 멀리까지 갔다가 삽질만 하고 오기가 일쑤이다.
당장 궁에서도
신군과 채경은 일출보기에 실패하지 않냔 말이다.
하지만,
난 어차피 일출엔 별 관심이 없었으니
바다를 본 것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그런 내가
어느날,
우리 집 거실에서 일출을 봤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날은 무슨 날이었기에 그토록 적나라하게 일출을 볼 수 있었을까?
내가 감탄하자,
엄마는 이제 알았냐는 듯
거의 매일 같이 일출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난 아침마다 디카를 준비해놓고 일출만 기다린다.
그런데,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우라쥘
겨울이 되면 왜 날이 흐릴까..
아니면 그만큼 태양이 멀어지는걸까?
아무튼,
산등성이가 불그스레하게 물들긴 하는데,
정작 해돋이는 영 보지 않다가
어느새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것이다.
일출!@!!
너 내 손에 잡히면 뒤진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안보여줬으니
이제부터도 절대로 내 눈에 뜨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