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궁 19부-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본문
궁19부를 보고 있자면,
작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난 만화 궁은 보지 않았다.
난 대체로 만화를 좋아하지 않기에
아마 눈 앞에 있어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원작 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전혀 모른다.
듣기로는 드라마를 찍을 당시에도 궁이란 만화는
결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궁의 원작자도 문제가 있다.
아마도 잔뜩 펼쳐놓고 수습할 길이 없어
갈등만 딥따 만들어내다가 홀로 우울해진 게 아닐까 싶다.
하긴,
저런 식으로 얘길 쓰자면 절로 우울증에 걸릴 것 같기도 하다.
억지를 피우는데,
바보가 아닌 담에야 스스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테니 말이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드라마의 횟수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로 희생되는 캐릭터가 없어야 한다고
날 일찌기 부르짖었지만,
대다수의 드라마는,
불행히도 그렇지가 못하다.
횟수를 채우기 위해 희생당하는 캐릭터는 더더우기 극중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일 때가 참 많다.
게다가 궁에는 율군이라는 복병이 있다.
대체로, 잘 만들어진 로코나 드라마는
주인공 간에 쓸데없는 갈등은 만들지 않는다.
만들어도 타당성 있게, 말이 되게, 오해나 그런 치졸한 수법을
쓰지 않고 세련되게 만든다.
김삼순이나 명랑소녀성공기, 줄리엣의 남자 등등을 보면
두 남녀가 어느 순간까진 힘겹게 투쟁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손에 손을 잡고 이젠 세상과 맞선다.
궁도 그래야했다.
신군과 채경이 더이상의 갈등은 멈추고
이제 그들을 위협하는, 아니 정확히는 채경이 사랑하는 신군이라는 인물에게
가해지는 압박과, 황위 쟁탈전에 맞서서 싸워야한다.
그건 신군이 황제가 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신군이라는 인물 자체를 망가뜨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채경이가 정말 신군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당연히 분개하고 싸워서 지켜야하는 것이다.
왜냐면,
신군을 가장 잘 아는 것이 효린이라면,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채경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제 궁을 신군과 채경의 궁으로 만들어야 했다.
즉, 개혁을 시작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 궁을 이제 21세기의 궁답게 만들기 위해
둘이 힘을 합쳐야했다.
여기서 채경이라는 캐릭터를 보자.
그녀는 대체로 비슷비슷한 드라마, 즉 싸가지 왕자를 사랑하게 되는
현실적이고 씩씩하며 다소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머리를 굽히지 않고
자기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형이다.
풀하우스에서의 송혜교와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초반의 채경을 보면,
신군은 푼수라고 하지만,
절대 푼수가 아니다.
순진하긴 하지만,
당차고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성격을 잘 유지한다.
하지만,
풀하우스의 송혜교가 캐릭터의 성격을 마지막까지 지키면서
실제로 남자를 끝까지 지켜주고 동시에 성장시키는 것과 달리,
그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였음에도
갑자기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18부 후반부터이다.
그리고 19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흔들린다.
그녀는 갑자기 홀로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처음보다 훨씬 매력없고 둔하고 말도 안되는 무게를 잡기 시작하면서
캐릭터의 매력도가 급격히 감소한다.
그걸 성장이라고 우긴다면 실소가 나온다.
예를 들어서,
강현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자.
강현은 말한다.
'신군이 널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남도 아는데 채경은 모른다.
'그럴까..좋아하긴 하나?'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사랑할 때, 그것은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그런데
타인에게도 보이는 그것이 채경에겐 갑자기 안보인다.
그리곤 갑자기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정이라는 등
무게를 잡으며 박박 우긴다.
채경은 그쯤에서 사랑 타령을 하며 갑자기 우울증 환자 같은 얼굴로
음침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게 아니라
(것도 반드시 율군이라는 파트너를 대동하고)
신군과 손을 잡고 궁에서 반대 세력과 싸우고,
그래서 신군의 명예를 지켜줌과 동시에 자신의 명예도 지키며,
아울러 궁까지 지키는 것에
앞장 서야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채경이란 캐릭터에 가장 들어맞는다.
무슨 생각에선지 작가는 갑자기 채경 캐릭터를 희생시킨다.
그런데,
왜 그래야 했을까?
바로 율군이다.
궁에선 율군이라는 캐릭터에도 공을 들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원작의 율과, 극중의 율이 너무 다르다보니
그만 어찌해야 좋을지 알 길이 없어졌다.
신군과 채경이 손을 잡으면
율군이 설 땅이 없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율군은 그저 신군과 채경 사이에 끼어서
사랑의 방해꾼이나 하고,
채경의 사랑이나 갈구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참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거지로 율군에게도 역할을 주는데,
그게 주로 신군의 험담이나 하면서,
신군에 대한 의심증을 부채질하는 정도의 인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아니, 대체 율이란 인물은
채경을 사랑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가?
왜 그래야 하는데?
율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율의 눈치를 보면서 우물쭈물하다보니.
아니 나름 율이라는 캐릭터도 버릴 수 없다며
오히려 그를 바보로 만드는 바람에
채경이는 율을 부여안고 낙화암으로 뛰어 내리는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둘이 같이 망가져간다.
얼마 전
인터넷에 떠도는 율 관련 리뷰를 읽다가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예전에
다모의 장성백이라는 캐릭터를 옹호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관념적이고 온갖 요상한 사상을 끌어다가
그를 땜빵하는 논문들을 써대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율이 그러하다.
그에겐 어울리지도 않고, 도무지가 말도 안되는 리뷰들이
율에게 주어진다.
그건 나중에 자세히 다시 말하기로 하고,
율과 채경을 보고 있자면,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솔직히
그 두 캐릭터에 대해선
이 말 밖에 해줄 게 없다.
율군의 경우, 자신이 채경을 졸졸 따라다니는 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치자.
신군이 볼 때, 율군과 채경은 한쌍을 이루며 늘 같이 붙어다닌다.
어쩌다 신군을 발견하면, 둘이 함께 뒤를 쫓기까지 한다.
물론, 거기엔 율군의 신군 행위에 대한 생중계가 따르는데,
그 해석은 늘 부정적이다.
신군이 볼 때
율군과 항상 같이 있는 채경은 어떻게 보일까?
그것도 율군을 피해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들은 척도 안하고 말이다.
효린을 완전히 정리하기 위해 효린을 찾아가는 모습도,
비록 정리하러 왔음에도, 그녀가 연습 도중에 쓰러지자
달려가는 모습도,
그들에겐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채경이 넘어졌을 때 율군이 달려가서 단 둘이 오붓하게 앉아
입맞춤까지 하는 장면을 돌이키면,
결국 그들의 마인드는,
자신들이 붙어다니는 건 사랑과 우정 사이의 순수한 로맨스이고,
신군과 효린이 만나면 불륜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채경이가 신군에 대해서
'신군도 나와 같은 마음이면 좋을텐데..'운운할 때
율이 한 말은 그야말로 폭소를 자아낸다.
설사 두 사람이 한 마음이 되다해도
그 시간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 시계바늘이 정지하여
그 사랑은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채경과 신군이 그렇다면,
율과 채경에게도 그런 법칙은 적용되야 하는 거 아닐까?
율이 대체로 내게 희극적으로 보일 때가 많은데
대개가 저럴 때이다.
저런 재밌는 말을
너무 심각하고 침통하게 한단 말이다.
물론,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려니
저절로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19부의 궁은,
작가가 신군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넘치고 흘러서
그만 채경과 율을 한꺼번에 바보로 만들기 시작하는
서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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